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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징벌적 손해배상이 손오공 여의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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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주인공 피가로는 아리아 '나는야 마을의 만능일꾼'을 부르며 신나게 재롱을 떤다. "라란라레랄라란랄라, 나는야 이 마을의 만능일꾼!…브라보 피가로, 브라보, 브라비씨모, 브라보!…모두가 날 보자 하네, 여인들과 아이들, 늙은이도 아가씨도. …여기서도 피가로, 저기서도 피가로, 위에서도 피가로, 아래서도 피가로,… 아무렴, 세빌리아에선 나 없인 여자들은 결혼도 못해." 하면서.


우리 법전에도 언제부터인가 피가로 같은 존재가 스며들었다. 바로 영미법계 제도인 징벌적 손해배상이다. 2011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처음 도입된 이래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과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조물책임법',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자동차관리법', '특허법',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등 20개 정도의 개별 법률에 들어와 있다. 나아가 민사관계 일반에까지 확대하려는 특별법안도 국회에 제출되었고, 심지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도 등장하여 언론탄압이니 위헌이니 하는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그 뿐인가? 정치인들의 공약과 심지어는 변호사회의 선거 공약에도 이것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얼핏 보면 손오공이 마왕들과 싸우면서 휘두르는 정의의 여의봉 같다.

이처럼 많은 법률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고 계속 확대하겠다는 이유는 단순하다. 기존의 손해배상제도로는 전보가 어려운 손해를 유발하는 기업 등 악덕 가해자의 위법행위에 대한 억지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인데, 이를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사회적으로 큰 손해를 끼치는 악덕 가해자의 위법행위에 대하여 실제 손해액의 몇 배에 해당하는 징벌을 가하여 그러한 위법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② 기존의 민법상의 손해배상제도는 손해전보에 충분하지 않다. 특히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인 위자료는 가해자의 위법행위에 대한 배상으로 충분하지 않다. ③ 악덕 기업 등 가해자가 다른 방법으로는 제대로 징벌을 받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손해배상이라도 몇 배로 물려야 징벌이 된다. 요약하면, 가해자에 대한 무거운 징벌과 미진한 손해에 대한 보완을 통한 정의 실현의 길이라는 것이다.

첫째, 실제 손해액의 몇 배의 징벌을 가해서 위법행위를 방지하자는 주장을 하는데, 이 문제에 관해서 질문 하나 하자: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3배나 5배 등의 배상을 해주는 것이 정의로운가? 물론 정의롭다고 대답할 것이다. 악덕 기업 내지는 가해자에게는 마땅히 그만한 제재를 가해야 하고, 그것이 정의니까. 그런데 이 대답은 질문과는 관계가 없는, 가해자 징벌에만 신경을 쓴 동문서답이다. 가해자에게 실제 손해의 몇 배의 배상금을 물리는 것이 정의로운가를 묻지 않았다. 손해를 입은 피해자가 세 곱절 내지 열 곱절의 배상을 받는 것이 정의로운지를 물었다. 피해자가 자기 손해액 1억 원을 모두 배상 받으면 손해는 100% 전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억 원 내지 4억 원을 더 받는 것이 정의롭다는 말인가? 이것은 정의로운 배상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폭리를 안겨주는 것이다. 우리 민법은 폭리행위를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위반행위의 대표적인 사례로 무효라고 규정하는데, 법으로 이것을 부추기는 것이 정의 실현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둘째, 법원이 인정하는 손해배상액은 실제 손해보다 너무 적기 때문에 몇 배를 배상 받아야 어느 정도 균형이 맞다고 주장한다. 특히 법원에서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인 위자료를 너무 적게 인정해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말은 맞다! 우리 법원이 인정하는 위자료는 위자료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아니, 실무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위자료 개념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 그러니까 개념적으로나 실제로나 완전히 별개인 재산적 손해와 정신적 손해를 제대로 구별하지 않고 뒤섞어서, 위자료는 재산적 손해의 배상이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보충적 작용을 한다느니, 재산적 손해와 정신적 손해의 배상청구는 소송상 청구(소송물)가 별개가 아니라는 주장(손해1개설)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정신적 손해라는 개념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주장이다. 오래 전에 일본에 갔다가 손해1개설을 들은 독일의 합샤이트(Habscheid) 교수가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는데, 위자료의 보충적 작용이라는 말까지 들었으면 이 분이 정신을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려서부터 서양은 물질문명이 발달했고, 동양은 정신문화가 발달했다고 배웠는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만일 위자료를 너무 적게 인정하기 때문에 징벌적 배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타당하다면, 그 속살은 실제로 피해자가 적정한 위자료를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지, 몇 배의 무거운 징벌을 가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악덕 가해자에게 무거운 징벌을 가해야 한다는 입법의 명분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위자료 인정 기준이 잘못되어 있으면 근본 원인인 터무니없이 낮은 기준을 현실화하는 것이 제대로 된 해결이지, 잘못된 기준에 몇 배를 곱해서 이를 징벌이라고 과대포장을 할 것이 아니다.

셋째, 악덕 가해자에 대한 다른 징벌이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손해배상이라도 몇 배를 물려 징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더 던져보자: 가해자에 대한 징벌이 민사법 영역인가? 우리가 속한 대륙법체계에서 행위에 대한 제재에 적용되는 법분야는 크게 형사법과 행정법, 민사법으로 나뉜다. 이 세 분야는 각각 제재의 목적이 다르고, 보호법익이 다르며, 따라서 제재의 내용도 서로 다르다. 형사법은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고 범죄자가 개과천선할 수 있도록 형벌을 가하고, 행정법은 공익을 위한 행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정법상의 의무를 위반한 사람에게 일정한 행정벌을 가하며, 민사법은 피해자에게 생긴 손해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가해자로 하여금 그 손해를 배상하도록 한다.

어떤 가해자의 악행이 범죄에 해당하면 경찰이나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를 해야 할 것이고, 행정규제를 어겼으면 행정청이 바로 조사를 해서 행정벌을 과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며, 민사상의 가해행위를 하였으면 피해자가 권리구제를 신청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법원칙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형벌이나 행정벌을 제대로 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범죄를 저질렀거나 행정법규를 위반한 가해자에게 민사 손해배상을 몇 배를 물리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사법과 공법, 형사법의 체계가 엄연히 구분되어 있는 우리 법체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형벌이나 행정벌과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을 과한다면 이는 부당한 이중처벌이다. 형벌이나 행정벌 '대신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과한다면 이는 형사법이나 행정법의 규율을 무력하게 만드는 규범 파괴이며, 가해자가 벌금 등으로 국가에 납부할 금액을 피해자에게 지급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횡재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경찰이나 검찰, 행정청 등에서 사건을 제대로 조사나 수사를 하지 않아 직무를 유기한 담당 공무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이것이 정의인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민사법, 형사법, 행정법 등으로 정치하게 체계화되어 있지 않은 미국 같은 불문법(不文法) 국가에서나 필요한 일이다. 남의 나라 법제도가 좋아 보여도 그것이 우리의 대륙법체계에 맞는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마구잡이로 들여와서 그렇지 않아도 여기저기 멍이 든 우리 법체계를 더 엉망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은 우리 국민이나 기업에게 징벌적 배상을 명한 외국 판결에 대하여 공서(公序) 위반을 이유로 승인을 거부함으로써 징벌적 제도의 남용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할 수 있었는데, 이런 마구잡이 입법이 계속되면 승인을 거부할 수가 없게 된다. 이처럼 우리 국민이나 기업에 대한 보호막을 스스로 걷어차는 것도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로마의 법학자 울피아누스(Ulpianus)는 "정의란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는 항상 부단의 의지"라고 했다. 정의란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는 것이다. 그의 몫보다 적게 주거나 많이 주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남의 몫을 떼어다 안겨주는 것도 정의가 아니다.

민사법상의 손해는 손해액을 정확히 산정하여 배상하도록 하고, 형사법상 또는 행정법상 제재는 빠짐없이 신속, 정확하게 가하는 것이 정의를 제대로 세우는 길이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이웃에게 사랑받는 만능 이발사 피가로의 가위도 아니고 삼장법사를 위해 싸우는 손오공의 여의봉도 아니다. 차라리 엿장사의 가위에 비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호문혁 명예교수(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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