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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민사소송에서의 증거절차 개선해야

최근 한국의 민사소송절차에 미국 소송에서의 증거절차인 디스커버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많다. 그러나 한 국가의 전체 소송절차 중에서 증거절차만 깨끗이 잘라내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며, 특히 영미법계와 대륙법계는 소제기 방식, 송달 방식, 기일의 결정 및 운영의 방식, 판결의 방식 등에서 크게 다르다. 이런 일련의 미국소송절차 중에 녹아들어가서 증거수집에 관하여 진행되는 절차가 디스커버리일 뿐이다. 그러므로 미국식 디스커버리를 온전히 그대로 도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왜 지속적으로 디스커버리 도입 주장이 나오는지는 신중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그만큼 한국 민사소송에서 증거수집절차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사소송법은, 법원을 주체로 한 증거조사만 여러 조항에서 규율하고 있을 뿐이고, 막상 소송당사자를 주체로 한 증거수집에 대해서는 거의 규율을 하지 않고 있다. 즉, 한국 민사소송법이 상정하고 있는 소송의 모습은, 이미 증거를 확보하고 있는 당사자가 소송에서 증거를 제출하면 법원이 이를 심리해 준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양쪽이 이미 충분한 증거를 공유함으로써, 어느 쪽으로부터라도 객관적 사실관계를 드러낼 수 있는 경우에는 오히려 법적 분쟁이 잘 발생하지 않는다. 법원에 오는 많은 소송에서는 증거가 편재되어 있다. 이런 증거편재 상황에서 증거의 수집에 대해 눈감는 것은 온당한 소송법의 태도가 아니다. 당사자에게 어떻게든 증거수집의 방편을 마련해 줄 필요는 절실하며, 그렇게 해야 '민사의 형사화' 현상도 완화할 수 있다.

혹자는 변론주의 원칙 하에서 증거수집은 각 당사자가 알아서 하는 것이고, 일방 당사자의 증거수집에 상대방 당사자가 협력해 줄 이유는 없으며, 따라서 증거수집절차를 소송법이 마련해 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송이라는 것이, 당사자 서로간에 소송절차상의 기술적인 조항들을 무기로 삼아서 서로 증거를 은닉하면서 실체적 사실관계를 법원에 대하여 속여서 결론을 얻어내는 절차여서는 안 된다. 이는 무기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며, 무기평등의 원칙은 변론주의 못지않은 소송상의 주요이념이다.

현재 소송법상으로는 문서제출명령이 거의 유일한 당사자의 증거수집방편이지만, 법원은 이에 대해 너무 소극적이다. 증거수집곤란을 극복하고자 2002년 민사소송법 개정 때 이른바 문서목록 제출제도가 들어갔지만, 법원은 이 제도의 활용에도 주저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법원은, 일방 당사자로서는 상대방이 소지하는 문서의 명칭과 내용을 특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함을 인정하고 전향적으로 문서제출명령에 응대할 필요가 있다.

때마침 오는 30일에 대한변협이 주최하는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에서 디스커버리 도입의 방안과 한계가 논의된다고 한다. 한국 소송이 은닉이 지배하는 소송절차가 되지 않는 쪽으로 합리적으로 발전해 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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