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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Detach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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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관의 중립성(impartiality)을 다투는 기피신청 관련 국제형사재판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선례는 ICTY의 'Furundzija' 사건(IT-95-17/1, Appeal Judgment, 21 July 2000) 이다. 현재는 필자와 같이 ECCC에서 근무하고 있는 Florence Mumba 재판관에 대한 기피 사유는 그녀가 ICTY 재판관이 되기 전에 유엔 여성지위위원회(UNCSW)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는 점이었다.


당시 그 위원회의 목표 활동 중 하나는 강간(rape)을 명시적으로 국제형사범죄로 편입하는 것이었고, 이에 따라 위원회는 구 유고슬라비아 내전 중에 벌어진 대규모의 강간 범죄가 반드시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되어야 한다는 결의를 하기도 하였다. 기피 신청인은, 강간이 국제형사범죄에 해당하는지, 강간에 대한 정의(definition) 규정의 범위를 더 확장하여야 하는지가 위 사건의 쟁점이므로 Mumba재판관이 관여하는 것은 객관적 불공정(bias)의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재판부는 그 신청을 기각하면서, 여성의 인권과 평등은 유엔 헌장에 반영된 원칙으로서 유엔이 추구하는 목적에 따라 강간 범죄에 대하여 처벌을 주장하는 행위가 기피신청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법관 역시 개인적 신념을 가질 수 있으며, 절대적으로 중립적인 법관을 상정하기란 어렵다고 판시하였다.

법관은 당사자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려 노력하여야 하고, 성인지 감수성을 지녀야 함은 물론, 때로는 '문학적 상상력(Poetic Justice, Martha C. Nussbaum)'까지 발휘하여야 한다는 요구를 받는다. 하지만 법관이 차별이나 편견 등으로 고통받아 온 소수자 집단과 공감하고, 급변하는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읽음으로써(A court ought not be affected by the weather of the day, but will be by the climate of the era, Ruth Bader Ginsburg), 그가 속한 시대와 장소의 균형자(equalizer of his/her age and land, Walt Whitman) 역할을 하는 것은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특히 이른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의 시대에 법관이 특정 집단에 우호적인 신념을 가지고 이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위험한 일이 되어 가고 있다. 다만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해석에 따르면, 헤겔은 개인이나 집단의 '인정 욕구'를 역사의 원동력이라고 보면서도 모든 인간이 자신의 존엄성을 인정받는 '보편적 인정(Universal Recognition)'만이 합리적 해결책이라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Furund?ija' 판결에서 보듯이 국제 인권과 같이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기준은 법관이 소신을 표명할 수 있는 적합한 도구가 되며, 이는 법관 개인의 주관적 감성이나 편견과는 전혀 무관한 영역임이 분명하다.

결국 법관은 내면의 열정과 신념을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는 한편, '다정한 무관심'(한승혜)이나 '관광객의 철학'(아즈마 히로키) 등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때로는 개별 사안과는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 보편적으로 승인된 기준에 기대는 지혜 또한 발휘하여야 한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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