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발언대

[발언대] 직구족 범죄자 만드는 전파법

172083.jpg

안타까운 사연을 접했다. 어느 학생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아마존(Amazon)에서 '직구' 해서 잘 쓰다가 중고거래 커뮤니티에 매물로 내놓았는데, 전파법 위반 혐의로 수사기관의 출석통보를 받고는 마치 큰 죄라도 지은듯 벌벌 떨면서 부모님을 대동해 조사를 받았다는 사연이다.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 학생이 무슨 법을 위반한 것일까?


개인이 해외직구를 할 때에는 이른바 '전파인증'이 면제되는 반면, 직구품을 중고로 팔 때에는 전파인증을 꼭 받아야 한다는 정부 유권해석이 있다. 이 학생이 전파인증을 안 받은 전자제품을 판매하려 했기 때문에 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전파인증이란 전파법 제58조의2 제1항에 따른 적합성평가를 말한다. 전자파장해를 주거나 전자파로부터 영향을 받는 기자재(이하 '방송통신기자재 등')를 제조·판매·수입하려는 자는 적합성평가를 받아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적합성평가 대상이 되는 '방송통신기자재 등'의 범위는 매우 넓다. 와이파이나 블루투스 통신 기능을 탑재하고 있거나 무선신호로 작동되는 전자제품은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무선신호의 출력이 과도하게 강하지 않은지, 인접 주파수대역을 침범하거나 전파 간섭으로 다른 기기를 오작동시킬 우려가 있는지 등을 평가한다.

한편,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개인이 사용하기 위해 반입하는 기자재 한 대에 한하여는 적합성평가가 면제된다는 예외조항이 있다. 그런데 이 예외조항은 해외직구 시점에서만 적용될 뿐 중고 판매 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 유권해석의 내용이다. 적합성평가를 받으려면 대략 수백만 원의 비용이 든다. 전파인증 비용을 내느니 중고 판매를 포기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처럼 해외직구 전자제품의 중고 판매 시 적합성평가를 반드시 받으라는 유권해석은 그 중고거래를 사실상 금지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해외직구한 전자제품은 평생 끌어안아야 한다는데 그것이 사실이냐?"는 질문이 빈번하게 올라온다. 와이파이나 블루투스 기기가 무슨 위험물도 아닌데 중고 판매를 못 하게 하다니, 그렇게 재산권을 제한하는 합리적인 근거가 과연 있는 것일까.

이번 사연은 필시 누군가가 해당 직구품 판매 글을 보고 신고를 한 것이 발단이 되었을 것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말썽 없이 중고거래를 하려면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정식 수입품을 구매했어야지"라는 압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전파법의 원래 취지는 불량 전자제품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동일 모델이 전파 인증을 받고 수입·판매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직구를 하더라도 전파 위해(危害) 우려는 현실적으로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정부는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다. "동일 모델이라 해도 국내 수입업자를 거친 제품과 해외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제품이 서로 다른 부품을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전파인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전파 위해가 우려된다면 애초에 전자제품 직구 자체를 막거나, 또는 전파인증 비용을 공공의 부담으로 돌려야 마땅하지 않을까.

결국 이 문제는 향후 수사기관의 혐의없음 처분이나 법원의 무죄판결이 나와야만 매듭이 지어질 듯하다. 거들기 위해 몇가지 논리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통상적인 개인의 중고거래는 전파법 제58조의2 제1항 소정의 '판매'가 아니다. 개인이 사업성을 갖지 않고 일시적으로 중고품을 판매하는 것은 소득세 과세대상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수익을 목적으로 중고거래를 반복적·직업적으로 하는 예외적인 경우라면 '판매'에 해당할 수 있겠지만, 본인이 쓰던 물건을 일회성으로 중고장터에 내놓는 것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인증의무'는 '물건'에 대해 부과되는 의무이므로, 비판매용·개인용 반입 기자재 한 대에 대해 적합성평가가 한 번 면제되었다면 이 물건에 대해서는 종국적으로 인증의무가 면제된 것이다. 만약 이와 달리 그 물건을 양도할 때 인증의무가 부활한다고 본다면 위 인증면제 규정이 사문화(死文化)되고 만다.

셋째, 전파인증 부담 없이 자유로이 물건을 거래할 수 있는 것이 자연법적 상태이고, 예외적으로 전파 위해가 우려되는 경우에 전파인증 의무를 지우는 것이므로, 구체적인 전파 위해 우려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전파인증 의무를 지울 법적 정당성은 없다.

전파법이 마치 '해외직구품 중고거래 금지법'처럼 오남용되는 현재의 상황이 하루 빨리 바로 잡히기 바란다.


전승재 변호사 (법무법인 바른)

리걸에듀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