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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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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법과대학 입구에 '정의의 종'이 있었는데(지금은 건물 내부로 이전), 법대 건물을 드나들 때마다 정의 종 아래 새겨진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는 법언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초년 법학도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듯이 '법을 통해 사회 정의를 구현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법대를 지원했기 때문에 이 법언은 처음부터 뇌리에 박혔다.

 

그런데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는 말은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굳건한 결의를 가지라는 명령임에도, 정작 학교에서는 하늘이 무너져도 세워야 할 '정의'는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철학과 교양수업을 듣고 다양한 책을 보고 사색도 해보았지만 사회생활도 해본 적 없는 학생 신분에서 그 정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학교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 싶었지만, 당시엔 선배들이 자유스러운 대화나 토론보다는 일방적인 사상교육을 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웠다. 다만 


생각은 나와 달라도 자신을 던져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려는 모습에는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고민도 잠시,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진지한 고민은 뒤로 미루게 되었다. 물론 시험공부가 지루해질 때면 이 법서 속에서 배운 것들을 정의로운 일에 쓸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진로를 선택하여야 할 때 여러 고민 끝에 전문성 있는 변호사가 되기로 결정하였고, 변호사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길도 있다고 믿고 훌륭한 변호사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다. 가끔 대학생 시절 정의의 종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였지만 사건처리에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 '변호사인 내가 정의라는 것을 고민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자괴감에 빠진 적도 있다. 이렇게 시간은 말 그대로 흘러갔다.

 

그런데 변호사로서 많은 사건을 통해 다양한 부조리, 불공정, 불평등, 불합리 등을 접하면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하나씩 되새겨 보게 되었고, 이제야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는 법언이 새삼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사건처리과정에서 경험한 불의(不義)를 보고 이에 분노하면서 이를 극복하고 싶은 마음에 정의에 대한 새로운 목마름도 생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만 각자의 정의를 하늘이 무너져도 세워야 할 정도의 각오로 상대방에게 강요한다면 오히려 정의를 아예 논하지 않는 것만 못할 것이다. 정의를 세우기 전에 '세워야 할 정의'를 찾는 과정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조선시대의 사화가 21세기에 재현되지 않으려면).

 

순수한 청년의 열정으로 정의에 대한 꿈을 한 번이라도 품어 보았던 법률가라면 누구나 가슴 뭉클했던 순간이 있었을 텐데, 변호사로서, 실무가로서 현실에 몰입하여 사느라 잠시 잊고 있었다는 것이 못내 무안하고 부끄럽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세워야 할' 정의가 무엇인지 묻고 고민하고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울 것이라는 거창한 각오까지는 아니라도 꼭 세워야 할 정의라면 한 알의 밀알이라도 되고 싶다.

 

 

조정욱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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