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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청년시대

함께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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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돔현상으로 39도 이상의 폭염을 견디던 어느 날, 이보다 더 더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느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던가. 그 어느 해 여름, 건조하고 뜨거웠던 바람, 바닥에서 올라오던 열기, 뜨겁던 태양이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그 시절 함께 했던 친구들이 떠올랐고,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들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 중에는 지금까지도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좋은 추억으로 남겨진 사람들도 있었다. 서로를 알게된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지만, 선명히 떠오르는 얼굴들도 있었다. 그리고는 문득 떠올리게 되었다. 좋아하던 단어와, 그 이유도.


어린 시절, 영어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가장 좋아하는 단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with’라고 답했었다. 누군가는 ‘사랑’을, 누군가는 ‘꿈’을, 누군가는 ‘믿음’을, 누군가는 ‘희망’을 가장 좋아한다고 답할 때, 나는 ‘함께’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들이 좋았고, 마음을 나누고 함께 하고싶은 일들을 하는 것을 즐거워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로서 업무를 시작하고, 책임이 더욱 늘어가면서 오히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이나 나눌 수 있는 마음들은 더 작아졌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좋아하는 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사라져갔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나누는 일상도 희미해져갔다. 일상의 한켠에서 차곡차곡 이런저런 성취들이 쌓여갔지만, 그만큼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늘어갔다. 선택의 일환이고 어쩔 수 없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분주한 일상들로 진짜 좋아하던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걸 깨닫게 된 순간, 모든 것이 낯설어졌다. 내가 달려가는 길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되물어야 했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1년, 5년, 10년, 혹은 그 이상으로 오랜 기간동안 알고 지낸 사이 중에서도, 돌아보면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사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면서, 혹은 누군가의 소개로,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다를지라도 서로를 마음으로 응원해주고, 때로는 마음을 전해주기도 하고, 힘과 위로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

현대에는 스스로를 보호하고, 상대방을 위한다는 이유로 ‘불가근 불가원’이라는 용어가 관계의 대원칙인 것처럼 사용되곤 한다. 마음에 일정한 선을 두고 상대방을 대할 때도 있다. 물론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각자를 위한 공간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스스로 규정해둔 그 선이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넘지 못하는 한계가 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상대에게 그어두었던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인가, 혹은 과감히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한 것인가. 이에 대해 이미 결정했다고 생각했는데, 낯선 상황은 우리를 다시 관계 정립의 시간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그리고 고민하게 한다. 지금의 관계를 그대로 유지해도 괜찮은 것인가. 우리의 관계가 진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진짜’ 관계란 어떤 것인가.

다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혼자 걸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생각하게 된다. 함께 걷는 길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을지라도, 함께 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소망하게 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전별 변호사 (K&Partners 변호사)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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