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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변호인 조력권, 충분히 보장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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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이름으로 아빠를 용서하겠습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에 나온 대사이다. 주인공 예승이가 사법연수원생이 된 후에 모의재판에서 돌아가신 아빠를 생각하며 한 말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대사에 가슴이 뭉클했을 것이다. 영화 속 예승이의 아빠는 정신지체 장애를 갖고 있었고, 수사기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억울한 누명을 쓰고 복역하다 죽음을 맞는다.


'7번방의 선물'은 1972년에 있었던 '춘천 강간살인 조작사건'으로 불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건의 피해자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15년을 복역했다. 다만, 영화와 달리 2011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아 풀려났다.

이와 같은 억울한 사연이 영화에만 있는 일일까?

2019년에 형사 입건된 국민은 약 236만 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5%에 이르는 수치이다. 그 중 70만 명에 대해 기소가 이루어지는데, 기소된 인원 중 1만 명이 공판 단계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다. 한편 사법연감에 따르면 형사 재심 사건은 연간 천여 건 이상인데, 그 중 10%의 사건에서 재심이 인용되어 유죄 확정판결이 번복된다고 한다. 범죄 혐의로 입건되는 국민의 숫자와 잘못된 수사로 기소되었다가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게 되는 국민의 숫자가 모두 일반적인 예측보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번방의 선물'이라는 영화에서 보듯이, 사회적 또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국민들은 수사초기에 제대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한 번의 잘못된 진술로 누명을 쓰게 되는 등 예상치 못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한번 잘못 설정된 수사 방향은 이후 공판절차에 이르러서도 뒤집기가 매우 힘들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 비슷한 사례들을 숱하게 봐왔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에서 누명을 쓴 피해자는 소아마비 장애인이었고, 삼례 나라슈퍼 사건에서의 피해자들은 지적장애인이었으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15세의 소년으로 사회적 약자였다. 그 밖에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피해자,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의 피해자 또한 시각장애인이거나 지적장애인이었다.

이들은 모두 사회적 약자로서 수사과정에서 경찰로부터 폭행 등 가혹행위를 받고 진술을 강요당했다. 만약 수사 초기부터 변호인이 참여하여 가혹행위를 방지하였다면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 또는 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인권보호는 국가의 책무이다. 이들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헌법상의 권리라고 해석해도 충분하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피의자 단계의 국선변호 제공이 보편화되어 있다. OECD에 속한 35개 국가 중 29개국이 피의자 단계에서 국선변호인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는 연구도 있다.

법무부는 피의자 중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에게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드리기 위해 형사공공변호인 제도 도입을 추진해 왔다. 그 동안 여러 관계 기관들과 논의하였고 그 결과 지난 7월 13일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를 담은 형사소송법 및 법률구조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입법예고하였다.

법무부가 마련한 안은 단기 3년 이상의 법정형에 해당하는 범죄에 대한 혐의로 출석요구를 받은 자 중, 미성년자, 70세 이상인 자, 듣거나 말하는 데 장애가 있는 자 등 사회적 약자들과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 등 경제적 약자들에게 국가가 수사 초기부터 국선변호인을 선정한다는 내용이다.

한편 이처럼 필요적으로 국선변호인이 선정되는 경우가 아니라도 경제적 자력 부족 등 법령에서 정한 일정 요건에 해당하는 피의자에게는 신청과 국가의 심사를 통해 국선변호인을 선정한다.

피의자 국선변호인은 외부 개업 변호사들을 위촉하여 명부를 작성해 두고 대상 사건이 발생하면 선정을 하게 되는데, 명부 작성과 변호인 선정 등의 행정 절차는 법무부 산하 형사공공변호공단이 맡게 된다. 형사공공변호공단은 형사공공변호인 제도 시행에 따라 설립된다.
민간영역이나 소관부처를 두지 않은 독립적인 기관을 통해 운영하지 않고, 법무부 산하에 형사공공변호 공단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운영함으로써 국선변호인의 독립적인 변론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형사공공변호공단은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변호를 직접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개업변호사를 국선변호인으로 위촉하는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에 대응하여 변호인을 신속하게 선정해 주는 역할을 하는 행정적 지원기관의 성격을 갖는다.

변론의 독립성도 중요하지만 국가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운영기관의 공공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법무부가 소관부처가 되어 형사공공변호공단의 행정적인 운영을 관리·감독하여야만 예산의 적정 편성이나 집행의 투명성 등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한편, 법무부는 형사공공변호공단의 공공성과 개별 사건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하였다.

형사공공변호공단의 이사회에서 피의자 국선변호인의 운영과 관리에 관한 사항을 전담하게 하고, 이사회의 자율적 운영을 보장하였다. 이사회의 구성은 법원, 법무부, 대한변호사협회, 학계가 각각 추천하는 11명의 인사들로 이루어지고, 이사장 또한 이사회의 의결로 선출하도록 하여, 임원진 구성에 법무부가 사실상 관여하지 않는다.

또한 피의자 국선변호인이 수행할 구체적 사건에 대해 법무부장관이 지시나 명령을 할 수 없게 하는 규정을 두고, 국선변호인의 관리와 운영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때에는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받지 않도록 하였다. 그리고 국선변호인 운영에 관한 제반 사항에 대해 법무부가 지도·감독할 수 없도록 규정하였다.

이 밖에도 법무부 장관이 감사를 선임하거나 이사를 해임할 때 그리고 회계, 예산 등에 대해 지도·감독할 때에는 법원, 대한변협 등 유관기관의 의견을 사전에 청취하고, 그 결과를 통지하도록 하는 등 여러 장치들을 마련하였다.

법무부는 입법예고 기간 동안에도 형사공공변호공단의 운영과 개별 사건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더 좋은 방안이 있는지 계속하여 각계의 의견을 청취하고 반영할 것이다.

한편 국가 주도하는 국선변호 사건이 확대되면 기존 개업 변호사들의 법률서비스 영역을 잠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경찰 피의자 신문 절차에서 변호인의 참여 비율은 그동안 약 1%에 불과하였다. 특히 형사공공변호인은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위해 선정되므로, 사선 변호인이 선임되어 왔던 기존 사건들의 경우 영향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연간 약 2만 건의 사건에서 국가에 의해 변호인이 추가로 선임되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피의자 단계에서 국선변호인이 선정됨으로써 수사 단계에서도 변호인의 조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변호사 업계에 새로운 영역이 개척되기를 바래본다.

검찰과 경찰 사이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에 1차적 수사종결권이 부여되고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됨에 따라 경찰 수사절차에서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적법절차 준수 여부를 감시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이 수사 초기에 도움을 받지 못해 더 이상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이제 법조계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변호인 조력을 어떻게 확대해 나갈지 논의해야 할 시기이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헌법상 권리이다. 형사공공변호인 제도가 신속히 도입되어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이 수사절차에서 실질적으로 변론을 할 수 있게 되고, 수사 과정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인권침해가 방지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상갑 인권국장(법무부)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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