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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사] 부동심의 자세로 중용의 덕을 실천한 법조의 큰 어른

윤산(允山) 이홍훈 전 대법관 영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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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사회적으로 혼란의 시기인 2021년 7월 11일 오전 6시 50분경 대한민국 법조계는 중도(中道)의 균형점을 찾아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법조의 큰 어른 윤산(允山) 이홍훈 대법관님과 아쉬운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윤산 선생님은 훌륭한 인품과 자상하고 인자한 법조인으로 평생을 따뜻하면서도 올곧은 선비의 삶을 사셨습니다. 4년 전부터 병마와 함께 하시면서도 밝음을 잃지 않으시고 만나 뵈올 때마다 담담하게 생사여일(生死如一)의 경지에 오른 선승과 같은 삶의 자세를 보여주셨습니다.

윤산 선생님은 전주북중, 경기고,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사법시험 제14회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제4기를 마친 후 초임 법관으로 부임한 이래 제주, 수원, 서울지방법원장을 거쳐 대법관으로 공직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치셨습니다. 수원지방법원장 재직 시절 대법원장의 발탁제의를 윤산 선생님이 순리를 존중하여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고사한 일화는 일각에 알려진 사실입니다.

윤산 선생님은 법관으로 봉직하면서 여러 사건에서 의미 있는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특히 행정소송에 있어 무효확인소송의 보충성을 민사소송과 달리 파악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보충의견과 4대강 사건에 관한 소수의견은 대법관으로 봉직하면서 행정법과 환경법에 관하여 내린 획기적인 판결로 청사(靑史)에 길이 남을 업적이라고 사료됩니다. 아울러 대법관의 직에 있으면서 동아시아행정법학회 최송화 이사장과 함께 동 학회 이사로 활동하며 국제학술대회를 두 차례 개최하는 등 한국 행정법학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윤산 선생님이 대법관을 마치신 후 한국행정판례연구회 제10대 회장으로 3년간 활동하는 동안 필자는 연구이사로 보필하며 가까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국행정판례연구회 회장 시절 서울행정법원에서 1년에 11회 개최되는 학술행사에 한 번도 빠지지 않으시고 매번 참석하셨으며, 학술발표를 마친 후 학자들과 맥주를 한잔씩 하면서 담소를 나누시고 편하게 대화를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법원에 계실 때는 물론 재야 법조인으로 활동하시면서도 변함없이 소탈하게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시는 모습은 풍도(風度)와 큰 덕을 갖춘 대인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대법관을 마치신 후 바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으시고 한양대 로스쿨과 전북대 로스쿨의 석좌교수를 역임하면서 법관으로 활동하면서 터득한 실제 경험을 후학들에게 전하여 주셨습니다. 법무법인 화우 고문변호사,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장, 법조윤리협의회 이사장, 서울대학교 이사장 및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위원장 등의 중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윤산 선생님은 천주교 신자임에도 불교철학에 관심이 많으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전북대 로스쿨 석좌교수 시절 특강에서 형식적 틀에 위축되지 말고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는 의미의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을 후학들에게 강조하셨습니다.

올 봄에 인생정원 편-아버지의 정원이 TV에 방영된다고 필자에게 문자로 보내주셔서 지인들과 감동적으로 시청하였고, 그동안 병마를 잊고 정원을 가꾸셔서 동료 교수들과 방문하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애석하게도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시고 홀연히 떠나시니 황망(慌忙)하기 그지 없습니다.

윤산 선생님의 인간과 세계에 대한 폭넓은 시야와 성실하고 깨끗한 공직자의 삶의 자세인 공인관(公人觀)을 몸소 실천하신 법조의 큰 어른으로 흠모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법관 재직시는 물론 그 이후에도 진정한 법조 원로로서 지혜와 경륜을 통해 국가사회에 큰 공헌과 성과를 이루어 내셨고, 국민의 권익신장을 위해 동분서주하시면서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기셨습니다.

윤산 선생님은 부동심(不動心)의 자세로 달관의 경지에서 일평생 중용의 덕을 실천하셨으며, 법조 후배들에게 이념적 편향성이 아닌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도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등 균형감 있고 조화로운 삶의 가치를 역설하셨습니다. 윤산 선생님의 평소 지론인 '조화와 균형'의 중도적 실천철학과 세계는 하나의 꽃과 같다는 '세계일화(世界一花)'의 사상은 이념적으로 분열된 우리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견인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윤산 선생님은 매사에 넓은 포용력을 발휘하시고 부지런히 쉬지 않는 자세를 실천적으로 보여주신 점에 비추어 주역의 건괘에서 말하는 '자강불식 후덕재물(自彊不息 厚德載物)'과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후학이 윤산 선생님의 인품에 매료되고 감화 되어 덕성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가르침과 고마움을 오랫동안 잊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하겠습니다.

윤산 선생님께서 남은 여생동안 완수하고자 하셨던 대담집 발간 등 미완의 일들을 모두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영면하시기 바라며, 비통한 심정으로 이제 고인이 되신 윤산 선생님의 명복을 삼가 기원합니다.

 

 

2021년 7월 13일

김용섭 교수(전북대 로스쿨·법학박사)

리걸에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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