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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공정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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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법률 중 '공정'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것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법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컨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규제법) 제6조(불공정 약관 조항),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불공정무역행위 조사 및 산업피해구제에 관한 법률,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 이 밖에도 법률 제목에는 없지만 개별 규정(예컨대 민법 제104조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공정' 또는 '불공정'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경우도 다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정'도 개별 법령이나 규정마다 그 요건과 해석이 제각각 다르다. 이는 전체를 아우르는 '공정' 또는 '불공정'에 관한 기본법이 없고 개별 법령마다 그 적용요건과 법률효과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개별 법령에서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불공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법적 규제가 미치지 못할 때가 있다.

한편 공정과 불공정 간에는 스펙트럼도 다양한데 이로 인한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할 때가 있다. 민법 제104조의 불공정한 법률행위나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의 불공정거래행위 또는 약관규제법 제6조의 불공정한 약관 등은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하지만 그 '불공정'의 적용요건은 엄격한 편이다. 이로 인해 (불공정하지만 법률이 미치지 못하는) '합법과 불법 간 경계의 틈새'가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객관적으로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에 현저하게 균형을 잃은 거래가 피해자의 어려운 사정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피해자가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에 이른 정도가 아닌 경우'에 민법 제104조를 적용할 수 없다면 '현저히 불균형한 계약'이라도 '공정한 계약'과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서 공정과 불공정의 딜레마가 발생할 수 있다. '적법한 공정'과 '(아직) 위법 판단을 받지 않은 불공정'이 그대로 방임된다면 시간이 지나 후자만 남을 수 있는데, 이는 공정사회로의 이행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자신의 불공정 행위를 '공정과 불공정의 문제'에서 '합법과 불법의 문제'로 전환하려는 유력인사의 모습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일도 그 중 하나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입법(예컨대 공정에 관한 기본법 제정, 아직 규제되지 않는 불공정에 대한 개별 입법)을 하거나, 정책적으로 '공정한 당사자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거나(예컨대 입찰에서 가산점 부여) '불공정한 당사자에게 불이익을 부여'(예컨대 입찰에서 벌점 부여)하는 방법 등을 통해 공정과 불공정 간의 간극을 좁혀나갈 수 있다.

공정 또는 불공정의 경계를 획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실정법 해석의 테두리 안에서 방치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법률가라면 '자유로운 불공정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조정욱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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