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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프리즘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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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로 이직을 하고 5년차를 넘길 무렵,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일을 10년, 20년, 계속 할 수 있을까. 잘할 수 있을까. 이게 정말 나에게 맞는 길일까.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목표라고 줄곧 생각했었다. 그러자면 한 우물을 파야 하고, 못해도 10년은 투자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이게 나에게 맞는 일인지 처음부터 어떻게 안단 말인가. 일단 가고 보는거지. 변호사 등록을 하고, 직장을 잡고, 주어지는 일을 하다 보니 금세 5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대로 우연처럼 전문성이라는 게 생길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게 두려웠다. 내 길이 아닌 것을 너무 늦게 깨닫게 되면, 내 힘으로 멈출 수 없는 관성이 생겨 있을까봐. 그리고 그 때부터는 맞지 않는 신발을 신은 것처럼 어색한 걸음으로 길을 가게 될까봐.

이러니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눈으로는 기록을 읽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직업선택 대실패', 물음표 오십개를 찍으면서 하루하루가 갔다. 어느 날 증인진술서 준비를 위해 사건 관련 실무진과 회의를 할 일이 생겼는데, 파트너 변호사님이 일이 생겨 내가 회의를 주재해야 했다. 기술·통신 사건이라 기록만 봐서는 이해가 쉽지 않았고, 담당 실무자들의 설명이 사건 파악에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그 날 세 시간 정도 회의를 하고, 그 이후로도 일주일에 두세번씩 담당자들과 연락을 하면서 사실관계 조각을 맞춰 나갔다. 거의 일년을 공들인 끝에, 사실관계에서 불의타를 맞지 않고 무사히 히어링까지 마칠 수 있었다. 사건이 끝나고 실무진 및 증인과 순도 100%의 감사 인사를 주고받았다.

나는 여전히 이 길이 나에게 맞는 길인지 확신이 없다. 우월한 두뇌와 남다른 승부욕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사건들 준비하던 과정을 돌이켜 보니 분명한 것이 하나는 있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고, 되물으면서, 사실을 뒤덮고 있는 모래를 조금씩 걷어내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유대를 쌓는 것. 나는 그게 좋았다. 이걸 깨닫고 나니 마음이 한 결 편해졌다. 어디로 가든 괜찮을 것 같았다. 사람은 계속 만나야 하고, 모든 사건에는 배경이 있으니 직업선택도 이만하면 잘 한 것 같았다. 한 우물을 파든 못 파든, 대수롭지 않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톨스토이가 천사 미하일을 통해 던진 두 번째 질문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였다. 확신. 어차피 이건 우리 차지가 아니다.


전아영 변호사 (웡파트너십(WongPartnership L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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