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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죽음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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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태어나리라 마음먹고 이 세상에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죽고 싶지 않다고 하여 죽음을 피할 수도 없다. 생명 있는 모든 육체는 언젠가 세상을 떠나야 한다. 심지어 순서도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분주한 일상을 살다보면 죽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뿐 아니라 당장 다음날 준비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그럼에도 모든 삶은 늘 죽음과 짝이 된다.


그렇게 분명한 죽음이지만, 죽음이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다 보니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삶을 사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법정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사건들 대부분이 죽음과 무관하게 아니 죽음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벌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고단한 삶, 당장 먹고 살기 힘든 삶은 때로는 죽음보다 더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고, 죽음조차 사치로 여겨질 정도의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죽음과 연관된 사건들에서도 죽음이 깊이 영향을 끼치기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이 우선순위를 가져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산 사람은 살아야한다는 것이 맞는 말 같지만, 상당히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들도 왕왕 일어난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고, 온 지구의 무게보다 무겁다는 말이 무색할 지경인 뉴스를 접하기도 한다.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이지만, 나와 내 가족, 내 이웃과 동료, 내 친구와 지인의 죽음이 아닌 경우 그 무거움과 안타까움을 함께 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 생명의 무게를 엄중히 받아들이고 '또 다른 나'의 죽음이라는 생각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너무 무심하게 다루어진 생명의 무게, 그렇다 정말 무심하게 취급당한 인생의 무게들은 속절없이 하루에도 몇 명이나 그 존재가 이 땅에서 스러지고 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살리는 것은 의료 영역이지만,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과 그 생명의 고귀한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해주는 것은 입법과 사법에서 감당할 역할이 분명히 있다. 사람을 살리는 법, 우리 공동체의 지극히 연약한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법, 호흡이 있는 모든 인생은 그 존재 자체로 동등하게 소중하다는 인식이 깊이 배어 있는 법률이 곳곳에서 흘러넘치면 좋겠다.


류기인 지원장 (마산지원)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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