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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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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무죄’ 판결은 변호사에게도 쾌감을 선사한다. ‘변호사님, 정말 무죄 맞나요?’라고 얼떨떨 해 하는 의뢰인의 말은 변호사에게 그날 밤 잠 못 이루며 되풀이 떠올리게 하는 훈장과도 같은 말이다. 이럴 때 난 뛸 듯이 기쁜 마음이면서도 이를 조금 자제하며 ‘무죄 판결이 선고될걸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느낌만은 꼭 의뢰인에게 전해주는 것을 포인트로 삼고 있다. 물론, 그 의도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을 만큼 내가 더 흥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게 함정이지만.


이렇듯 나에게도 ‘무죄’라는 말은 몇 번을 들어도 몇 번의 사건이 반복되어도 전혀 무덤덤하게 대할 수 없는 짜릿함이 있다. 이런 ‘전부 무죄’는 판결문 주문에 기재되지도 않는 일부 무죄와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다른 변호사가 수행하여 1심에서 유죄가 되었던 사건을 항소심에서 전부 뒤집어 무죄가 된다거나 유죄 판결로 전과가 발생함은 물론이고 사업이나 직업이 모두 날아가 버릴 위기의 의뢰인을 구해낸 경우엔 나 스스로가 ‘변느님’같은 우쭐함으로 고된 변호사 생활에 수액을 놓은 것마냥 잠깐 정신이 반짝 들고, 직업병으로 늘어져 나온 거북목도 몇일 간은 뻣뻣하게 기립을 하는 체험을 하곤 한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미드를 보다가 문득 ‘나는 변호사란 사람이 법률용어에 관해서 무심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다지 재밌지는 않았던 법정물 미드에서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 사건은 not guilty 수준이 아닙니다. 이건 100% innocent입니다’. 이 대사를 듣고 새삼 깨달았다. ‘아! 그렇구나 영미에서도 innocent라는 단어가 있지만 판결 선고는 not guilty라고 하고 있었구나!’

그 동안 고소를 하려는 입장의 의뢰인과 상담할 때 ‘상대방이 무죄가 되면 그땐 제가 무고죄가 되나요?’라는 말을 자주 듣기도 했고, 공소사실이 다 인정되었으나 증거법위반을 이유로 또는 법리상의 이유로 무죄가 선고된 경우임에도 ‘무죄 판결이 선고되었다. 법원에서 나의 결백이 밝혀진 것이다.’라고 말하는 파렴치한 정치인들도 많이 봐왔지만, 이런 말이 법률 용어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는 의심을 해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법조인은 당연히 ‘무죄’라는 용어의 개념을 잘 알고 있으니 위와 같은 질문이나 어처구니 없는 왜곡에 대해서도 웃어 넘길 수 있을 것이나 일반인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말은 개념을 담고, 그 말은 다시 개념을 만든다. ‘無罪’가 ‘없을 무’자를 쓰는 것은 분명 오해의 소지가 있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공소사실 자체가 허구라거나 알리바이 입증이나 된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딱 좋다.

우리의 ‘무죄’라는 법률용어는 일반에게 ‘innocent’에 더 가까운 의미로 통용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법리적으로도 검사의 입증이 실패하면 not guilty이지 이것이 곧 innocent는 아님에도 ‘무죄’라는 법률용어가 이런 형사소송법상의 개념을 온전히 담고 있는 용어가 맞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재판장님의 입에서 ‘피고인은 유죄 아님’ 또는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은 유죄로 인정되지 않는다’라는 말이 선고될 때 ‘무죄’라는 딱 떨어지는 말이 선고되는 지금보다 짜릿함은 덜할 것이 분명하나 그 말이 나 같은 일개 변호사가 듣고 더 기분 좋으라고 만든 말이 아닐 터이니 용어의 정확성에 관한 생각은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의뢰인과 같은 질문을 다른 의미로 하게 된다. 정말 ‘무죄’ 맞나요?


구자룡 변호사 (법무법인 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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