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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청년시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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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가르침을 엮은 논어(論語)는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로 시작한다. 이를 풀이하자면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이다. 공자는 성현의 가르침을 배우고(學), 이를 끊임없이 체화(習)하는 과정을 즐거움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배움이란 무릇 즐거워야 할 터인데, 지금까지 살아오며 해온 배움은 꼭 즐겁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배움이 즐거웠던 적도 있다. 그 중 하나는 젊을 때 타로카드를 배웠던 것이다. 10년도 더 이전의 일이라 어떤 계기로 시작을 하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몇 년 가량 꽤 진지하게 배웠고, 강의에도 여러 번 참가해서 소위 ‘고수’들의 가르침을 익혔던 기억이 난다. 그 가르침을 토대로 하여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알고 있는 타로를 통해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읽어냈었다. 지금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타로는 정답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이후 로스쿨에 진학을 하며, 여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서 타로를 접기는 했지만 이제 시간적 여유가 조금 생긴 만큼 다시 타로를 공부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하나의 선택을 할 때에 타로가 제시해주는 길이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은 분명했던 것 같다.

타로를 보는 법을 익힌 이야기를 하며, 첫 문단에서 논어의 가르침을 말하는 것이 모순될 수는 있을 것 같다. 공자의 시대에 공자나 그 제자들이 ‘타로’를 알지는 못했겠지만, 분명히 공자는 이를 두고 괴력난신(怪力亂神)이라 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논어 술이(述而)편에 나타난 ‘공자께서는 괴력난신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다.’(子不語怪力亂神)는 가르침은 공자의 가르침이 곧 진리였던 과거에도 때때로는 그대로 지켜지지는 않은 것 같다.

여말선초의 관료인 하륜(1347~1416)은 성리학에도 정통하였지만 동시에 관상을 잘 보았고, 훗날 왕으로 등극하는 정안군 이방원을 보고 단번에 왕이 될 운명임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당시는 정도전이 개국 1등 공신으로 문하시랑찬성사·동판도평의사사사·판호조사·겸판상서사사·보문각대학사·지경연예문춘추관사·겸의흥친군위절제사를 겸임하며 천하의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고, 신의왕후 소생의 왕자인 정안군 이방원은 숙청될 위기에 처해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익힌 관상학에 따른 결과를 신뢰한 하륜은 정안군 이방원에게 자신의 인생을 배팅하였고, 결과적으로 이방원이 천하를 차지하자 하륜은 이방원이 다스리는 천하에서 재상이 되어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공자가 말한 ‘괴력난신’이 하륜의 인생을 바꾼 셈이다. 하륜이 관상을 보고 이방원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왕자의 난 때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보면 옛 선비들도 괴력난신을 무조건 부정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성리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시대에 태어났던 하륜이 성리학을 즐겁게 공부했는지는 모르겠다. 1347년생인 하륜은 1360년 고려의 국자감에 입학하고, 1365년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가니 성리학을 잘 하기는 했을 것인데,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공자의 시대에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며 자신을 수양했을 뿐,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필기시험을 치루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중국의 수나라 시대부터 시행된 과거제도는 송나라 시대 문치(文治)가 절정을 이루며 옛 성현의 말씀을 공부하여 시험을 치루는 것은 선비의 기본 덕목이 되었고, 이러한 과거제도는 고려에 또한 도입되었으니 공자의 시대로부터 천년이 두 번이 지나며 시대가 많이 바뀐 것이다. 자신의 수양을 위하여 공부하던 옛 성현의 가르침이 이제는 사회적인 생존을 위한 배움으로 변하였으니, 공자와 그 제자들에게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이 즐거웠을 것이지만 하륜이 살아가던 시대에는 과연 즐거웠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하륜이 당시 괴력난신으로 치부되었던 관상학을 때는 분명히 즐거웠을 것 같다. 성리학이야 생존을 위한 공부였으니 즐겁지 않아도 무조건 했어야 하는 것이었으나, 관상학은 그것이 즐겁지 아니하였다면 공부했을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륜이 즐겁게 공부하였던 관상학에 따른 선택이 옳았기 때문인지 정안군 이방원은 왕위에 오르고, 단지 왕이 된 것을 넘어서서 태조에 버금간다는 의미의 ‘태종’이라는 묘호를 받게 되었으며, 하륜은 태종의 천하에서 조선의 기틀을 세운 재상으로 6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억지로 하는 공부, 생존을 위해 하는 배움은 그닥 즐겁지만은 않은 것 같다. 로스쿨에 재학 시절 했던 법학 공부는 로스쿨을 졸업하기 위해 했어야 하는 공부였던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즐거웠지만, 즐겁지 않았던 적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타로를 공부할 때에는 대부분의 시간이 즐거웠던 것 같다. 이 직업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평생 법을 공부하면서 살아가야겠지만, 하륜에게 그러했듯이 한번쯤은 ‘괴력난신’인 타로가 내 인생의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요즘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학부 전공이 교육학이었는데, 그것의 연장선상으로 선택하게 된 것이다. 학부 시절에는 그토록 지겨웠던 교육학이 생각보다 많이 재미있다는 것을 새롭게 느낀다. 여기에서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이 또한 즐겁기 위해서는, 그것을 평가하는 시험이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사회적인 생존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학습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시험이 없다면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도 같다. 이 부분도 교육학을 전공하던 학부 시절에 배웠던 것 같은데, 그 내용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평생교육학을 공부하며 관련 내용을 다시 익혀나가야 할 것 같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이 사회적인 생존을 위한 것일 때에는 즐겁지 않지만, 나 자신의 취미로 하는 것일 때에는 즐겁다는 당연하지만 지금까지는 잘 느끼지 못했던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최자유 변호사(서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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