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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프리즘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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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여름 휴가를 갔는데 호텔방에서 일을 했다는 이야기, 휴가 5일 냈다가 고객 연락 받고 3일 만에 사무실로 복귀했다는 이야기, 연말이 다 돼 가는데 사건이 몰려서 휴가를 반도 못 썼다는 이야기 등등. 해마다 듣는 로펌 괴담이다.


변호사들이 휴가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변호사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 혹은 고정관념을 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변호사들의 업무시간에 대하여 비현실적인 기대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긴급 질의라면서 자정이 다 된 시각에 전화를 하는 고객이 있는가 하면, 새벽 1시에 이메일을 보내면서 즉시 회신을 바라는 파트너도 있다. 변호사는 원래 24/7 스탠바이 하는 직업이라면서 아예 희망의 싹을 자르려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업무용 휴대폰, 회사 노트북, VPN'의 3요소를 통해 현실화된다. 인터넷만 되면 업무가 가능하도록 물적 설비를 회사에서 굳이 마련해 주신 덕분에, 변호사들은 그 업무 연속성을 끊고자 시차가 있고 인터넷과 로밍이 불안정한 나라를 찾아 해마다 떠나곤 했었다. 불행히도 날이 갈수록 전 세계의 인터넷이 너무 안정되어 도망갈 후보지가 줄어들고 있었는데(필자는 아프리카 섬에서도 고객 전화를 받은 일이 있다), 그 와중에 코로나19까지 터졌다. 국내 어딘가에 내가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파트너도 알고, 고객도 아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재택근무를 하는 곳에서는 휴가와 근무의 경계가 한층 더 모호하다.

시원하게 전화기 꺼놓고 있으면 될 일이지만, (분하게도) 저 고정관념이 내 머릿속까지 스며들었다는 것이 문제다. 기대치에 밑돌아서는 안 된다는 본능으로 결국 휴대폰을 다시 집어들고 노트북과 충전기를 주섬주섬 챙기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변호사는 휴가 제대로 못 쓰는 것이 당연할 만큼 남들과 다른 직업인가.

코로나 때문에 결혼하고 신혼여행 못 간 사람들도 있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허다한 마당에 휴가 타령 하는 것이 포시라운 소리이지만,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픈 법이라 했다.


전아영 변호사 (웡파트너십(WongPartnership L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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