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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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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는데, 쌀쌀한 초봄에 합정역 아닌 서초역 5번 출구에서 가을에나 필 법한 국화를 보았네요. 그들은 허리가 끊긴 채 장례화환에 박혀 큰 법원의 흰 청사를 품고 있었고,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그린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의 인물이 된 것인 양 처음 보는 기괴한 모습에 압도되어 할 말을 잃었습니다. 게다가 리본에 적힌 운율 맞춰 기재된 골계미 충만한 글을 보니 헛웃음도 나고 부끄러웠네요. 어떤 글들은 그 표현에 비추어 적시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표현의 자유를 일탈한 것으로 보였고 이에 대하여 고위 공무원도 모욕죄 고소를 하던데 대리인 통한 고소는 없는지, 왜 저들이 방치되어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편 이 모습이 사법부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고, 판사와 그 진실성에 대한 신뢰가 당시 떨어져 밟히던 변색된 꽃잎과 비슷하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벌써 2달 전 일인데 그들은 다행히도 철거되었다 하고, 법원의 섭리에 따라 재판기일이 바삐 돌아가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혹자는 사법부 위상이 잠수함도 아닌 이상 다시 떠오를 날에 대한 기다림을 믿는 대신 무뎌짐을 바라면서, 타이타닉 악사들만큼 묵묵히 확진자만큼 줄지 않는 미제들을 처리하고 백신만큼 인력충원을 기다립니다. 그 와중에 최근 별지3 범죄일람표가 큰 화제가 된 판결에 의하면 무릇 판사는 '쟁점이 적은 신건들만 처리'하고자 하는 유혹을 밀어내고, '직업적 단련'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니 좋은 재판의 길은 아직 멀고 험합니다. 위 판결이 발굴한 '나태한 판사에 대한 지적권한'이 법원행정처에게 있다면 현제도에서도 적시에 사건을 처리하는 좋은 재판을 위해 나태한 이를 지적할 수 있겠단 생각도 들고, K-중재 관련 칼럼, K-반도체 관련 뉴스를 읽다보니 사법부도 과정이 공정하고 결과가 정의로운 좋은 재판을 K-재판으로 추진하면 어떨까 상상해 봅니다. 행정처에서 다음 주 월요일부터 4주간 좋은 재판 지원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한다는데 클리셰(cliché)를 넘어 실제적인 제도개선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재판이 월요일인 게 아쉽네요. 창밖 호수 위 두루미(鶴) 한 마리가 떠나고 봄날은 무심히 가고 있습니다.

 

 

김창모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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