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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청년시대

마리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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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전, 많은 사람들의 신혼여행지 목록에는 아마 인도양의 섬나라 모리셔스가 있었을 것이다. 허니문의 꿈이 가득한 이 섬에, 세상에서 가장 긴 외로움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770년대, 그러니까 나폴레옹이 아직 미운 일곱살이던 무렵, 모리셔스 섬은 프랑스의 영토였다. 당시 프랑스군 기지를 어기적어기적 걸어다니는 몸길이 1. 2미터의 거대한 코끼리거북이 있었다. 이름은 마리온. 그를 데려온 프랑스인 탐험가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마리온은 군부대의 마스코트로서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었다가 추방당하고 모리셔스가 영국에 넘어갈 때까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도 모리셔스 섬 유일의 코끼리거북이었다.

모리셔스에 처음부터 코끼리거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인도양의 수많은 섬들 대부분에는 코끼리거북이 살았다. 이들은 섬마다 조금씩 다르게 진화했지만 거의 유사한 모습이었다. 1미터가 넘는 커다란 체구에, 아침 저녁에는 풀을 뜯어먹고 낮에는 나무그늘에 모여 잠들었다. 마리온 역시 세이셸 섬에 살던 세이셸코끼리거북 중 하나였다.

이들의 평화가 깨진 것은 1700년대 후반.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유럽인들이 인도양의 외딴 섬들에 발을 딛기 시작한 이후였다. 냉장고도 진공포장도 없던 시절, 오랜 항해를 하는 선원들은 신선한 고기를 필요로 했다. 코끼리거북은 정확히 그들이 필요로 하던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한 마리가 250킬로그램이나 되었으며, 창고에 뒤집어 두면 먹이를 주지 않아도 오래 살아있었다. 선원들은 인도양의 모든 섬에서 코끼리거북들을 인정사정없이 잡아 배에 실었다. 어떤 항해일지에는 한 명이 하루에 1200마리의 코끼리거북을 잡았다고 적혀 있었다. 헤엄도 칠 줄 모르고 느릿느릿 걷는 평화로운 거북들이 이를 피할 길은 없었다. 인간들이 섬에 남기고 간 염소와 쥐떼들도 거북의 먹이인 풀들을 빼앗고 알을 훔쳐먹었다. 아무리 오래 살 수 있어도, 아무리 단단한 등을 가졌어도 이를 견뎌낼 수는 없었다. 코끼리거북들은 빠르게 멸종해 갔다. 오늘날 코끼리거북을 볼 수 있는 곳은 당시의 주요 항로에서 벗어나 있던 갈라파고스와 마다가스카르 제도뿐이다.

마리온의 동족인 세이셸코끼리거북들 역시 이를 피해가지 못했다. 1800년경, 학자들은 세이셸 섬의 코끼리거북이 모두 절멸하였음을 확인했다. 그후 120년 동안, 마리온은 혼자서 세이셸코끼리거북이라는 한 종을 대표하는 유일한 생존자였다. 아니, 정확히는 함께 멸종된 세이셸코끼리거북의 아종 12종 전체를 대표하는 마지막 거북이었다. 고향에서 2천 킬로미터 떨어진 모리셔스 섬의 포병부대 한가운데에서, 그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리온은 오래 고독을 견뎌나갔다. 장수하는 코끼리거북 중에서도 가장 오랜 생존으로 기록된 삶이었다.

모리셔스에 끌려온 후 160년 동안, 마리온은 총 서른 두 번 탈출을 감행했다. 기지를 벗어나면, 어디로 가려 했던 것일까. 마리온은 헤엄칠 줄 모르는 육지거북이었고, 모리셔스가 고향 세이셸로부터 2천 킬로미터 떨어진 섬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이미 120년 전에 세이셸 섬의 모든 코끼리거북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더더욱 몰랐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1918년의 어느 날, 마리온은 평소 싫어하던 높은 포대에 올라가 있었다. 당시의 군의관은 그 즈음 마리온의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완전히 시력을 잃기 전에, 그가 무엇을 보고 싶어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인도양의 수평선 너머에 있을 고향의 나무그늘과, 낮잠을 즐기던 친구들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곳과 자신 사이를 가득 채운, 깊고 푸른 바다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마리온은 이날 서른 세 번째 탈출을 감행했으며, 이번에는 성공했다. 포대에서 추락하며 입은 치명상이 그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추정연령 200세. 세상에서 가장 오랜 삶, 혹은 가장 오랜 외로움을 살았던 마리온의 주검은 성대한 장례식을 거쳐 대영박물관에 안치되었다. 하지만 마리온은 정작 이런 소동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평소처럼 어기적어기적 머리를 돌려 사라졌을 것이다. 아주 오래, 그를 기다려온 친구들의 곁으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다는 것은, 살면서 반드시 누군가와 이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중했던 이름들이 내 곁에서 사라져가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아무리 오래 기다리더라도 결코 만날 수 없는 견고한 이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거대한 생명체들은 삶이 선사하는 고독이나 무책임한 희망 따위를 차곡차곡 등에 올려놓은 채 홀로 걷는 일에 익숙하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고 해서 이 오래된 삶의 질량이 결코 줄어들 리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안다.


이언 변호사 (서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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