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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복을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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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법관으로 임용되던 첫 날의 일이다. 임명식장에서 처음 지급받은 법복의 안쪽에 '김지현'으로 이름이 잘못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맞춤 제작이라 찾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사실 다른 법복들은 주인을 다 찾아가고, 넓은 홀에 남아 있던 법복이 그것 하나뿐이기도 했다). 잘못된 이름쯤이야 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본래의 기능 수행에도 특별한 지장이 없으며, 그래도 불편하다면 이름을 다시 새겨 입으면 되었을 것을… 법정에 들어갈 때마다 괜시리 이 법복이 내게 맞는건가 하는 갈등의 시간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지금 돌아보면 초임판사의 경미한 신경증 정도로 생각되어 가벼운 미소가 머금어진다.

 

법복은 다른 색과 섞이지 않는 검정색을 주색으로 사용함으로써, 어떠한 외부적 영향에도 동요하지 않는 법관의 독립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영국처럼 빨강 등 다소 화려한 색감이 포함된 법복도 있지만, 대체로 많은 국가의 공통된 법복 색상은 이처럼 검정색이다. 미국 연방대법원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었던 산드라 데이 오코너는 검은 법복을 입음으로써 헌법과 법치주의 수호라는 공통의 책임의식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이 같은 함의 때문에 '법복을 입다, 법복을 벗다'와 같은 표현은 법관이 수행하는 직무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

 

가면증후군(imposter syndrome)이란 심리적 현상이 있다. 자기가 가면을 쓰고 많은 사람들을 속였다고 생각하며 현재의 성취를 불안해하는 심리를 말한다. 법복의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누구나 그와 유사한 심리를 느낄 수 있다. 법복 자체도 충분히 무거울 진데 해결을 기다리며 쌓여가는 많은 사건들, 재판에 대한 필요 이상의 과도한 비난, 육아나 질병 등 개인적 곤란까지 겹치면 그 무게는 상상 이상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법복을 절반만 걸쳐 입을 수는 없는 일이다. 법관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여러 요소들이 최소화되기를 바라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법복을 입는 매일매일 마음자세를 가다듬어 법복의 무게를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김지향 지원장 (공주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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