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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판결초고와 제조물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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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제 이야기 아닙니다. 예전 어떤 부장판사가 손을 털며 지나는데 이유가 연필로 판결문을 너무 많이 고쳐 손목이 아프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어떤 부장은 컴퓨터로 수정하느라 눈이 아픈 경우 작성한 배석에게 제조물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법리검토를 하는 분도 있었고, 다른 분은 '초고'라는 용어 때문인지 판결문에서 열의도 성의도 느낄 수 없다고 개탄하셨네요. 쟁점이 많고 기록이 방대한 사건은 심리도 어렵지만 종결 후 판결문 작성에도 판사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합니다. 그래서 배척될 것이 명백해 보이는 주장은 이유를 설명한 후 철회를 권유하였고, 대부분은 철회해 주셨네요. 이를 통해 재판부의 시간, 노력뿐 아니라 A4용지와 프린터토너도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변론을 종결하면 합의부에서는 합의를 거친 후 주심판사가 판결문 초고를 작성합니다.

 

부장마다 고치는 방식이나 문체가 다르지만, 저는 파일을 받아 수정하였고, 가끔 여력이 되면 판사님들께 고친 후 그 이유도 설명을 드리면서 자신이 없는 부분은 제대로 이해해서 고친 것이 맞는지 여쭤보았습니다. 판결은 사실인정, 논증, 결론으로 논리가 전개되는데 판결초고에서 논증이 빠지거나 부실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즉, 필요한 내용을 '~~한 점'의 방식으로 열거 후 '이에 비추어 ~하다'는 결론이 갑자기 나오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데, 논증이 사실인정 부분에 섞여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로 인하여 논지가 불명확하면 문장을 살라미처럼 잘라 다시 이어 붙이곤 했습니다. 물론 같은 실수가 반복되면 재판부와 제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그냥 조용히 고치기도 했네요. 아… 이건 제 이야기가 맞습니다.

 

합의부장을 하면서도 합의결렬로 판결을 써서 주심을 설득하거나 수정보다 창작이 더 낫겠다고 판단되거나 특정 주심에게 결심사건이 몰리는 경우 등 직접 판결을 쓰기도 했으나, 잊지 말자 다짐한 것은 무에서 유를 창작하는 수고가 매우 크고, 남의 잘못을 비판하는 건 쉽다는 것입니다. 법정용 승강기에서 혼자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감사하게도 판사님들이 밥 먹자 연락을 주시네요. 5월 온 세상 어린이들이 세계평화를 꿈꾸듯 저도 전국 모든 합의부에 사랑과 평화가 충만하길 바래봅니다.

 

 

김창모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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