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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청년시대

모순을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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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중국의 최초 왕조라 하는 하(夏)나라가 건국되기 이전의 신화시대에는 삼황(三皇)과 오제(五帝)가 중원을 통치하였다고 한다. 중국 한족들은 오제의 필두인 황제(黃帝) 헌원(軒轅)을 자신들의 시조로 보고 있는데, 황제가 통치한 시기는 대략 기원전 2600년대로 추정된다고 한다. 명나라 시대 때의 명검기(名劍記)라는 책에 따르면 황제 헌원에게는 '헌원검(軒轅劍)’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광채가 푸르고 투명했다고 한다. 아마 청동검일 것이다. 또한 서경(書經) 주서(周書) 여형(呂刑篇)과 산해경(山海經)에 따르면 황제 헌원과 비슷한 시기에 치우(蚩尤)라는 존재가 있었는데, 치우의 형상은 동두철액(銅頭鐵額, 구리로 만든 머리와 쇠로 된 이마)이라 하고 있다. 신화시대에 헌원과 치우는 탁록에서 마지막 전투를 벌였는데, 헌원이 승리하였다고 한다.(다만, 치우가 승리하였다는 학설도 있다.)


물론, 산해경과 서경은 춘추전국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사기는 전한의 무제 시대에 지어진 책으로, 기원전 2,600년은 그들의 시대에서도 까마득한 고대였기에(카이사르 시대의 로마인들과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설과 비슷한 시간의 격차이다.), 그들도 그때까지 전해져오는 기록을 참고하거나, 구전으로 전해져오는 이야기에 따라 기록을 하였을 것이므로 그 기록이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긴 하다.

일반적으로 중국에서의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1,600년전부터 기원전 400년까지를 의미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철기를 이용한 농기구가 보급이 되었으나, 당시의 기술로는 철기를 이용하여 청동기를 이용한 것보다 강한 위력을 가진 무기를 만들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철을 이용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상당 기간 청동기가 함께 사용이 되었다. 춘추전국시대의 전설적인 검인 간장(干將)과 막야(莫耶)는 철로 만들어졌으나, 월왕구천검(越王勾踐劍)은 청동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자객 형가가 진왕(秦王)(당시에는 아직 황제를 칭하기 이전이었다.) 영정(?政)을 암살하려 할 때 진왕 영정이 칼을 뽑아 막아야 하는데, 그 칼이 너무 길어 뽑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고, 칼을 성공적으로 뽑아내 형가의 다리를 한번에 잘라버렸다고 하는데, 이 때의 검이 청동검이라고 한다. 청동으로 상당히 긴 검을 만들 수 있으며, 그 검은 사람의 다리를 한번에 자를 정도의 강력한 위력을 가지는 것인데, 이는 청동을 가공하는 기술이 최고도로 발전한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청동제 무기로 무장한 진나라의 군대는 철제 무기로 무장한 전국시대 여섯 나라의 군대를 모두 격파하니 중국은 통일이 되고, 그 때부터 통일제국 진나라의 역사가 시작된다. 한(漢)나라 시대에 이르러 초강법(抄鋼法)이 개발되고 나서야 철은 군수물자에서도 청동을 완전히 대체하게 된다.

그런데, 첫 문단의 헌원과 치우의 이야기를 보면 청동기 시대의 시작보다 1,000년도 더 이전의 신화시대에 청동기와 철기라는 금속이 사용되었단 기록이 보인다. 물론, 중국에서의 청동의 사용은 간쑤성 근방의 마자야오 문화에서 보이듯 기원전 3,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는 한다. 다만, 이는 말 그대로 최초로 사용했다는 것에 불과하다.(최초의 사용을 기준으로 하면 철기 시대도 기원전 3,000년까지 거슬러 간다.) 그 시대에 헌원검이나 동두(銅頭)처럼 무기나 투구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위력의 청동제품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며, 철액(鐵額)처럼 이마를 가릴 수 있는 철제 보호구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그 시대에 선진적인 금속문명이 발달했었던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아니면, 단순히 역사서가 집필된 시기가 신화시대에서 2,000년이 넘는 긴 시간이 지난 이후라서 잘못 기록한 것인가하는 생각도 든다. 한 때 고고학을 전공하기를 꿈꾸기도 하였고, 지금도 고대사에 관심을 갖고 관련 문헌들을 자주 탐독하는 입장에서 이토록 모순되는 기록들이 있을 때 항상 이런 의문이 드는 것 같다. 의문을 해소해 줄 다른 논문이라도 있으면 좋은데, 그마저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나 자신이 그런 모순들을 종합적으로 해석하고 결론을 도출해 낼 역량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하다 보니 답답할 뿐이다. 역사적 사실은 분명 하나인데, 서로 모순되는 기록들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법원의 판결도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요즘 판례 평석을 하나 작성하고 있다. 그런데, 사건의 진행 상황이 재미있다. 한 사건(이하 'A 사건')에서는 채권자(甲)가 채무자(乙)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다. 그리고 또 다른 사건(이하 'B 사건')에서는 채권자(甲)가 수익자(丙)를 상대로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하였는데, 피보전채권이 甲의 乙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이다. 당연히 사해행위 취소소송에서는 피보전채권이 존재하는지 여부가 검토되어야 한다. 이 피보전채권은 甲의 乙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인데, B 사건을 심리한 법원에서는 피보전채권(손해배상채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A 사건을 심리한 법원에서는 甲은 乙에 대하여 손해배상채권이 있다고 하였다. 손해배상청구권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분명히 하나의 역사적 사실인데, A 법원과 B 법원은 모순되는 해석을 하는 것이다.

A 사건의 담당 법원(하급심)에서는 甲이 乙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이 있다고 하는데, B 사건의 담당 법원(하급심)에서는 甲이 乙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이 없기 때문에 丙에 대하여 사해행위 취소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물론, 이 사건은 대법원이 교통정리를 하였다. 대법원이 A 사건에 대한 확정판결을 먼저 선고하였는데, B 사건에서 A 사건의 사실인정 및 판단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만약에 대법원이 이 부분을 간과하였다거나, 아니면 당사자가 상고를 하지 않아서 A 사건과 B 사건이 모순된 채로 확정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甲이 乙이 무자력 상태라서 丙에게 넘어간 재산을 회복시키려 하는데, 껍데기만 남은 乙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만 인정받고, 막상 丙을 상대로 사해행위 취소를 하지는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역사에는 모순되는 부분들을 정리해 줄 사람이 없다. 전지전능한 신(神)이 존재한다면, 그 신이 사실 역사적 사실은 어떻다고 말해줄 수 있겠지만 신이 설사 존재하더라도 그런 것을 알려주지는 않을 것 같다. 먼 훗날 타임머신이 만들어지면 모순되는 부분들 중 무엇이 사실인지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법을 공부하다 보니, 서로 모순되는 문제들을 교통정리 해 줄 사람이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 것 같다. 아무도 교통정리 해주지 않으면 수많은 학설들과 모순되는 하급심 판례들이 끊임없이 대립했을 것이다. 역사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다. 과거의 일을 바탕으로 오늘날 교훈을 얻게 될 수는 있겠지만 헌원과 치우가 청동기나 철기를 사용하여 전쟁을 하였는지에 대해 모순되는 의견이 대립된다 하여도 오늘날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법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갈등을 해결하는 수단이다. 만일 교통정리를 해 줄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아찔함을 느낀다.


최자유 변호사 (서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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