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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프리즘

라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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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신문에 웬 라마단인가 했을 수도 있겠다.

 

얼마 전 회사 전체메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돌았다: "Dear All, Please be informed that Ramadan begins on 13 April 2021, … Your kind understanding towards our Muslim colleagues during this fasting month would be very much appreciated." 곧 라마단이 시작되니 무슬림 동료들을 배려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요즘은 전원이 사무실 근무를 하지는 않기 때문에 좀 덜 하지만, 코로나 전에는 모두 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일하다 보니 라마단 기간에 본의 아니게 무슬림 동료들의 신경을 긁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일출부터 일몰까지 금식이니,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물도 못 마신다고 생각해 보라. 그것도 한 달 동안. 나 같으면 4일차쯤 아무나 붙잡고 화풀이를 할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서 업무를 한다는 것이 너무 대단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개인의 종교이니 업무에 지장 없게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 "배려를 해줄 수는 있지만 요구할 권리는 없다", "다른 종교 가진 사람들은 티 안내고 다니지 않느냐"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회사 탕비실에 할랄 전용 전자레인지를 구비해야 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다고도 한다. 배우기를, "종교의 자유는 신앙의 자유, 종교적 행위의 자유, 그리고 종교적 집회·결사의 자유 세 가지를 내용으로 하고, 내적 자유인 신앙의 자유는 제한할 수 없지만 그것이 종교적 행위로 표출되는 경우에는 제한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는 자를 한 쪽에, 그 상대편에 있는 자(혹은 사회)를 반대쪽에 놓고,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적어도 어느 한 쪽은 원치 않는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권리' 또는 '개인의 자유'를 시작점에 놓고 법이 어떤 근거로 그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거나 제한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나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게 최선일까' 라는 의문이 부쩍 자주 든다. 한 개인의 권리와 다른 개인의 권리는 과연 대척점에 있는 것일까. 법의 역할은 대립적인 권리들 사이에서 적당히 금을 긋는 데에 그치는 것일까. 삶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가. 밑지는 장사가 결국 나에게 이익일 때가 있지 않은가. 이래서 사람들이 변호사를 싫어하나.

 

언젠가 더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특히 코로나 이후) 서유럽의 개인주의에서 출발한 개념들을 돌아보고 있다.

 

 

전아영 변호사 (웡파트너십(WongPartnership L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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