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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44년 전의 흑백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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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계를 돌려 44년 전, 1977년으로 가본다. 가족들이 주말 저녁 한 상에서 식사를 하고 흑백TV에서 가수 혜은이가 부른 "청실~ 홍실~ 엮어서…”라는 노래가 나오자 동양방송(TBC)의 '청실홍실'이라는 주말 드라마(주연: 정윤희, 장미희, 김세윤)를 본다. 고학으로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에 입사하여 장래가 촉망되는 남자 주인공은 헤어진 옛 애인인 대학시절 첫사랑과 건설회사 사장의 딸 사이에서 고민한다. 사랑에 관한 삼각관계 말고도 이 드라마에서 눈에 띄는 점은 아들 부부가 부모님, 누이와 함께 살고 있는 대가족의 모습이다. 비단 이 드라마뿐만 아니라 1980년대, 1990년대의 인기 드라마들을 보아도 주인공은 부모님, 형제자매와 같이 살고 친척들과도 활발히 왕래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제 다시 시계를 돌려 2021년 현재로 온다. 주말 저녁이라도 가족들이 한 상에서 식사를 하고 오손도손 둘러앉아 TV드라마를 같이 시청하기란 쉽지 않다. 결혼 후에 부모님과 같이 사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결혼 전이라도 1인 가구로 독립하는 경우가 많다. 금요일 저녁 인기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는 이미 2013년 3월부터 절찬리에 방영 중인데 혼자 사는 유명인들의 일상을 관찰 카메라의 형태로 담아 보여준다. TV드라마에서도 주인공이 혼자 사는 경우가 많고 이야기의 구성에 따라 직장 동료, 친구들은 종종 등장하지만 주인공의 부모님, 형제자매, 친척들이 옛날처럼 당연히 출연하지는 않는다.

 

앞에서 굳이 1977년을 지목한 이유는 우리 민법에 유류분제도가 신설된 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모습은 크게 변화하였고 대표적인 특징은 1인 가구의 증가라고 할 수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9년 기준 1인 가구의 비율은 30.2%(총 615만 가구)이고 2015년 이래 1인 가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44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가산(家産)이라는 개념과 가족·친척 간의 연대도 많이 희미해졌다. 반면 눈부신 경제성장에 따라 많은 자산가들이 출현하였으며 기부문화도 확산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일군 재산이 사후에 민법에 따라 상속인들에게 도식적으로 승계되는 것보다는 본인이 생전에 계획한 뜻에 따라 재산이 처분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현행 유류분제도는 이러한 계획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민법이 배우자와 직계비속 외에 직계존속, 형제자매까지 폭넓게 유류분권자로 인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비율도 획일적이기 때문이다. 2021년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특히 1인 가구의 경우- 유류분제도는 현 시대의 색채를 담아내지 못하는 44년 전의 흑백TV처럼 느껴질 수 있다.

 

최근 법무부는 유류분제도의 개선 계획을 발표하였다. 1977년의 유류분제도에서 벗어나 1인 가구로 대표되는 현대 사회의 가족 구조와 한층 높아진 재산처분의 자유에 대한 요구를 충실히 반영한 유류분제도로 탈바꿈하길 기대한다.

 

 

정소민 교수 (한양대 로스쿨)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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