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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청년시대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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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일을 당한 사람에게, 너무도 쉽게 “왜 그때 그런 선택을 했어”, “그러게.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말을 한다. 때로는 “그 모든 것은 결국 당신의 결정이잖아. 그러니 이런 결과도 오롯이 감당해야지”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삶은, 때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닐 때가 있다. 선택이 불가능한 지점에 서는 일도 있고, 선택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차마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어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경우도 있다.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자신의 삶의 이유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신속히 그 자리를 벗어났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어떤 일의 결과가 발생하기까지는 많은 변수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과만을 보고 말을 하곤 한다. 법률분쟁을 겪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말들은 견디기 어려운 아픔을 주기도 한다. 상대방을 신뢰했기에 동업을 결정했지만 결국 어려움으로 끝이 난 경우,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많은 상처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관계를 쉽게 포기하지 못했던 경우,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을 위해 어려움을 감내했지만 오히려 그 인내가 자신을 향한 공격의 무기가 되는 경우, 우리는 너무도 쉽게 “그러니까 동업은 하지 말았어야지”,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끊으면 되잖아”, “뭐하러 참았어. 그냥 나오지”라고 말하지는 않았던가.

그런 말들이 일반적으로는 타당한 경우들이 있다. 동업을 하는 것은 늘 위험이 따르고, 가장 소중한 관계라 할지라도 자신을 파괴하도록 두면 안된다는 것도 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조직을 참아줄 필요가 없고, 계속 참기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당사자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것들도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두자고 생각하면서도 차마 관계를 끊는 결정을 할 수 없을 때도 있고,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괴롭지만 그만둘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이유들이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경우라면 제3자의 시선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그만두는 선택은 할 수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인생에 정답이 있을까. 우리의 선택은 늘 옳은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늘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타당한 선택만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인가. 물론, 객관적으로 볼 때 납득이 어려운 선택을 했던 경우, 선택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머무르는 모습을 보는 경우 우리는 아쉬움을 토로할 수 있다. 때로는 조언을 해 줄수도 있다. 그리고 그 조언이 상대방에게 큰 도움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때로는 그런 말들이 날카롭게 다가와 가눌 길 없는 슬픔을 더해줄 때도 있다. 현재 발생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사람에게 더한 고통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역시 객관적으로 그 사람의 선택을 이해하기 어려운 때가 있다. 분명 그 사람의 잘못된 선택으로부터 기인한 일이라고 생각될 때도 있다. 그렇다면, 이해하기를 멈추고 그저 곁에 있어주는 선택을 해보는건 어떨까. 그때 그 사람은 객관적으로 좋은 선택을 하지 못했을지라도, 아직 우리에게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더없는 위로가 된다.


전별 변호사 (K&Partners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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