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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과 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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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부터 점진적으로 오피스 근무 체제로 전환하는 로펌들이 많다. 일년 넘게 재택근무를 하다 사무실로 돌아가려니 어째 반응들이 미적지근하다.

 

재택근무 초기만 해도 "아무래도 사무실 근무가 낫지"가 중론이었다. 기록은 어떻게 만들 것이며, get-up은 어떻게 하냐(여기는 기일이 1~2주씩 잡혀 있는 경우가 많아서 기일 직전에 한 방에 모여 며칠동안 기일 준비를 하는데, 이걸 'get-up'이라고 한다) 등등 걱정이 많았는데, 딱히 저항은 하지 않은 덕에 일단 재택근무로 체제 전환은 됐다.

 

그렇게 집으로 유배된 변호사들의 방황은 시작되었다. 거실에서, 식탁에서, 옷방에서, 베란다에서 해도 일이 손에 안 잡혔다. 옆에서 업무를 서포트 해주던 유익한 인간들은 없고, 집에는 나의 일 따위 전혀 관심 없거나(무익적), 나와 놀고싶어 하거나(유해적), 나와 같은 시간에 회의를 잡는(경쟁적) 인간들만 있었다.

 

그래도 다들 격정의 가구 재배치 시기를 한 번씩 거치고, 가정불화의 위기를 두어 번 극복하고 난 뒤 이제는 나름의 재택 업무 프로세스를 정립한 듯하다. 이 새로운 업무 프로세스가 생활의 간섭을 적절히 포용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이를테면 고객회의 하나를 마치고 다음 회의까지 30분 정도의 빈 시간이 있다면, 빨래를 걷어서 개거나 아이의 숙제를 봐 주는 식이다. 사무실이었으면 기껏해야 내려가서 커피를 한 잔 사 오거나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왔을 시간이다. 개인의 삶에서 효율성이 늘어나니 재택근무를 뒤로 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은 것이 이해가 된다.

 

한국인들은 세상에 대한 기막힌 통찰로 '직장생활'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집과 직장이 분리된 환경에서 우리가 실은 두 개의 삶을 꾸려 왔음을, 우리는 직장에서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지 싶다. 이 지점에서 직업과 직장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직장 없이 직업을 유지할 수 있을까. 30분 자투리 시간에 동료와 함께 커피를 한 잔 사 마시거나 담배를 한 대 태우는 것이 주는 효용을 무시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이직을 주저하게 되는 이유 중에는 현재의 직장에서 닦아 놓은 생활을, 그 안에서 구축한 나의 자아를 버리기 쉽지 않아서인 경우도 많다.

 

어떤 근무형태가 장기적으로 적절한 방법일지는 아직 아무도 답을 못 찾은 듯한데, 어렵다고 '아몰라' 할 일은 아니지 싶다.

 

 

전아영 변호사 (웡파트너십(WongPartnership LLP))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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