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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민소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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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재판 안 하면 뭐하냐?"는 질문을 받는데 대부분 재판을 준비하고, 취미가 성악일 거 같은 다른 필자가 쓰셨듯이 민사에서는 준비서면을 읽습니다. 그런데 전자소송의 부작용으로 재판전날 오후부터 서면이 밀려들다가 오후 6시 전후 큰 파도가 치는데, 접수시간(17:58, 18:02 등)과 제출 시기에 비추어 다소 아쉬운 준비서면을 읽다보면 가벼운 마음으로 퇴근하는 변호사님 뒷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심지어 재판 날 변호사님은 법정에 계신데 준비서면이 접수되기도 하구요.

 

제가 민사소송규칙(이하 '민소규') 제69조의3을 들어 늦게 제출되는 서면에 대하여 지적하면 대개 기존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였단 답변을 듣는데 '그리 간단하면 더 빨리 내시지…'라는 생각이 들고, 가끔 위 홑 따옴표를 겹 따옴표로 하여 마음의 소리를 입 밖으로 내기도 합니다.

 

반면 해당 서면이 새로운 쟁점에 대한 것이고, 재판부나 상대방이 검토가 필요하면 기일이 공전되는데, 이게 반복되면 대리인의 성실성을 의심하거나, 어떤 분이신지 궁금한 마음이 들면 조심스레 동료에게 묻거나 조용히 법률신문의 온라인 법조인대관을 열어 봅니다.

 

민소규 제69조의3은 훈시규정에 불과하여 심급 구조상 1심에서 대리인들이 이를 지키지 않더라도 불이익을 줄 방법은 마땅치 않습니다. 그런데 기일의 공전으로 재판장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나중에 다시 기록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반복해야 합니다. 판사들의 한정된 시간은 공공재로 효율적으로 분배되어 사법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기일공전은 소송지연을 의도하는 자 외에는 모두에게 손실입니다. 더욱이 코로나와 법원 안팎의 상황 변화로 사건지연이 점차 심화되는 지금 상황에서는요.

 

또한 준비서면을 읽다보면 대리인의 과도한 감정이입, 당사자의 요청 때문인지 감정적 또는 상대방에게 모욕적인 표현을 읽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해당 사건은 변호사님들이 위임받은 일, 즉 남의 일이 아닌가 싶고, 선관주의의무는 다 하시되 과도한 표현은 자제함이 재판부와 동업자에 대한 법조예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당사자를 위해 불철주야 뛰시는 변호사님들께 경의를 표하고, 혹여 시간이 되시면 민소규 제69조의4도 일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창모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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