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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주연과 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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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자기 인생의 주연입니다. 동시에 누군가의 조연이고, 사회라는 무대에서는 대부분 무명 엑스트라입니다.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던 어린 시절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내가 세상의 중심이나 주연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또한 자신의 삶에서조차 주연으로 사는 것도 만만치 않지요.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얼기설기 엮여있는 사회구조 속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이란 아주 제한적이니까요. 일생 동안 고유한 자신의 삶을 살지도 못하면서 평생 조연이나 무명의 엑스트라로 살아가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주연은 물론이고 조연으로도 살고 싶지 않은 삶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범죄라는 무대에서는 주연(정범)을 맡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조연(종범)으로도 등장하고 싶지 않을 것이고요. 법률에서는 정범과 종범을 구분하고 있지만, 때때로 정범과 종범의 경계는 모호합니다.

 

드라마나 영화라면 악역이라도 멋진(?) 배역일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범죄라는 무대의 주연이나 조연은 물론이고 엑스트라라고 하더라도 피하고 싶을 뿐입니다. 하물며 피해자로 등장하게 되는 끔찍한 상황은 상상조차 하기 싫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범죄현장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때로는 사회구조가 누군가를 원치 않는 등장인물(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로 내몰기도 한답니다. 단편적으로 볼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왜?"라는 질문과 함께 구조적으로 볼 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등장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안도하거나 무심히 지나치기에는 사회구조의 문제가 심각할 수 있습니다.

 

범죄라는 무대에서 날마다 등장하는 누군가를 본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입니다. 형사법 절차에 정해진 대로 부지런히 사건을 처리한다고 비슷한 범죄가 재발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범죄와 처벌은 드러난 증상과 그 처방에 불과하니까요. 누구도 원하지 않는 안타까운 범죄현장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고유한 삶에서 아름다운 주연(이든 조연이든 모두 소중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명 엑스트라 한 명 한 명까지도 그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운명공동체니까요.

 

 

류기인 지원장 (마산지원)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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