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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견된 불확실성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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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23일, 싱가포르에서 첫 COVID-19 확진자가 발생하였고, 이후 본격 전염이 시작되었다. 3월 21일 최초로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3월 27일에는 법원에서도 기일 출석 기타 사건 진행과 관련한 제한조치를 발표하였다.

 

법원의 제한조치 내용을 대략 요약하자면 이렇다. '불가피하거나 긴급을 요하는 기일이 아니면 기일을 연기하거나, 서면으로 대체하거나, 영상회의 또는 전화회의 방식으로 진행할 것.' 이 제한조치의 발효일이 4월 1일이었기 때문에 변호사들은 수일 내에 어떻게든 준비를 끝내야 했다.

 

로펌에서는 기일 출석 인원 감축, 내부/고객회의 방식 전환, 기일 변경 등이 논의되었고, 불변기간 점검을 촉구하는 이메일이 회람되었다. 회사 내 회의실 몇 개를 버추얼 심리실로 지정해 영상회의 장비를 설치하였고, 물리적 거리두기 조치를 취하였다. 법원에서는 기일 전 대리인들에게 접속 방법 안내 등 구체적인 지침을 전달하였고, 기일에는 법원 실무관이 판사, 변호사, 증인 등 참가자들의 원격접속 허용/불허 등 기술적인 사항들을 관리하였다. 서증 기타 기록 현출은 e-litigation 시스템에 등록된 기록을 화면공유 기능을 사용하여 화면에 띄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한편 싱가포르는 증인들이 법원에 진술서(affidavit)를 제출하기 전 일정한 자격을 갖춘 제3자(Commissioner) 앞에 출석하여 진술의 진실성에 관한 선서 또는 확인을 하여야 하는데, 이 역시 영상회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써 놓으니 순탄하였던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모두가 준비 안 된 상태로 미지의 신대륙에 들어서는 상황이었기에 단지 서로에게 조금 너그러웠을 뿐이다. 이처럼 예견된 불확실성이 역설적이게도 일말의 여유를 벌어 주었고, 생소한 법적 이슈들도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다. 이를테면 'A국에 살고 있는 A국 국민인 증인을 싱가포르 법원의 판사가 A국 법원의 사법공조 없이 영상회의 방식으로 직접 신문하는 것이 A국의 사법주권을 침해하는가' 같은 것들이다. 이론적인 질문들이 아니라 당장 사건을 진행하려면 답변해야 하는 질문들이었다.

 

싱가포르 내 지역사회 감염은 오늘도 0명이다. 하지만 법원은 아직도 대다수의 사건을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다음주면 만 1년의 비대면 재판 경험이 쌓인다. 지난 한 해, 내가 가지 못한 한국의 법원가는 어떤 시기를 보냈을까.

 

 

전아영 변호사 (웡파트너십(WongPartnership L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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