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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春來不似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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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촉촉이 내리더니 수줍은 미소를 머금던 목련이 끝내 꽃망울을 터뜨린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은 자연의 순리라 하는데, 코로나 속에 잠시 잊어 버렸던 자연의 순리를 꽃망울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가 자연의 순리와 이치를 잊어 버린 것은 아닌가? 그로 인해 우리 속에 지니고 있던 상식이 무너지고 양식이 무디어진 것은 아닌가?

 

'한명숙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수사팀이 유죄 판결을 받아내기 위하여 재소자의 위증을 교사했다는 의혹과 관련하여 고검장들과 대검 부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소여부에 대한 투표가 이루어졌다. 투표 결과를 떠나 그 사건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기에 법무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대검에서 투표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국민의 일반적 사건에 있어 법무장관이 직접 수사기록을 검토하거나,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적이 있는지 잘 기억이 없다. 아마도 사건의 본질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데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공개가 맞는지, 비공개가 맞는지 모르겠으나 대검 회의 당시 공개하지 않기로 보안각서를 쓰자는 이야기까지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애초부터 국민이 알아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피의사실 공표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형사사건 공개금지에 관한 규정'까지 만들어 과거의 폐단을 없애겠다고 하였지만, 정작 극히 일부 사건 외에는 그와 같이 엄격하게 피의사실 공표 문제가 다루어지지도 않는 것 같다. 이 규정이 시행된 이후 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많은 정보가 제공되는 사건도 있고, 그 반대로 거의 제공되지 않는 사건도 있다는 것은 짧은 우리의 경험이 말해 주고 있다. 국민의 입장이 아니라 정보제공자의 관점에서 제도가 만들어지고, 운용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법무장관의 수사지휘든, 대검 회의든, 형사사건의 공개금지든, 그 모든 것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무이다. 공직자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위임의 취지에 따라 행사할 뿐이며, 그 취지를 벗어나게 되면 위임인은 언제든지 위임한 권한을 거두어 들일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상식과 이성, 합리성에 기초한 객관적 판단과 그에 기초한 승복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상식과 이성, 합리성은 거추장스러운 것이며, 승복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회복불가능한 패배를 의미할 뿐이다. "LH에 근무한다고 하여 투자를 못할 이유가 뭐냐"고 반문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이미 상식과 승복이 실종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상식과 승복이 사라진 이유는 위임의 본지(本旨)를 벗어나 위임받은 권한을 고유권한인 것처럼 착각하거나, 대인(對人)과 대기(對己)에 있어 판단의 기준이 원래부터 다르다고 생각하는 그릇된 신념에서 기인된 것이 크다. 무너뜨리는 것은 쉬우나, 한 번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는 것은 정말 어렵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이 천년 전 흉노 땅에서 봄을 맞은 왕소군의 심경이 이 봄에 더욱 와 닿는 듯 하다.

 

 

이상철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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