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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법관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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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의 상당 부분은 읽는 것입니다. 종이기록을 읽고, 전자문서를 읽습니다. 법정에서 재판 할 때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읽기로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재판관련 서류 읽기는 전형적인 패턴이 있습니다. 법률요건 또는 구성요건에 맞춰 읽습니다. 요건사실을 추려내고, 사실과 주장을 구분하여 읽습니다. 주장임에도 사실처럼 쓰인 경우도 있습니다. 주장과 사실이 뒤섞여 있을 때는 사실을 추려내고, 그 사실을 증거와 대조해서 다시 읽어 봅니다.

 

역사적 사실, 객관적 사실이 하나인 것 같지만, 관점 또는 경험의 내용에 따라 조금씩 다른 사실이 존재합니다. 대립하는 당사자 사이에서는 사실의 간격이 심연과 같습니다. 어떻게 이럴까 싶지만, 저 자신도 기억 속의 사실과 객관적 자료의 차이가 있었던 경험이 있고, 함께 여행을 갔던 일행들 사이에서도 후일담의 차이가 있는 것을 보면 수긍이 됩니다.

 

그럼에도 역사적 사실, 객관적 사실을 찾는 것은 법관의 숙명입니다. 그러다보니 법관의 읽기는 활자를 넘어섭니다. 법정에서는 변론하거나 진술하는 당사자와 변호사 및 검사의 태도, 말투, 호흡, 눈빛, 뉘앙스 등을 세심하게 읽게 됩니다.

 

활자를 통해 파악한 사실과 진술자의 태도 등을 통해 파악한 사실이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고, 그동안 읽어 온 모든 것을 종합하여 드러난 사실 이면을 읽어내기가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입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에 공감합니다.

 

이러저러한 읽기를 두루두루 종합해서 곱씹어 보고 마음의 눈으로 찬찬히 읽고 또 읽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읽었던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 영상이 무한 반복되기도 합니다. 사건의 실체, 사실을 읽어내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법관의 숙명이기 때문입니다.

 

법률적용이 어려울 때도 있지만, 사실 확정이 어려운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나은 읽기를 위해 법전과 판례에만 매몰되지 않고, 세상과 사람을 읽는 시간도 조금씩 꾸준히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과 사람을 읽는 힘이 커갈수록 사건들이 말하고 있는 사실을 제대로 읽어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사실에 맞는 법률 적용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류기인 지원장 (마산지원)

리걸에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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