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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기갑(機甲)의 돌파력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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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의 돌파력으로 군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버리겠다.' 대한민국 육군 전차조종수 고 변희수 하사의 다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성전환 수술 후 여군으로서 복무하려던 희망은 사라졌다. 수술이 고의적인 성기 훼손에 해당하고 이는 심신장애 3급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강제 전역 조처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전역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소송 진행이 부진해지자 지난 3월 초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기갑의 돌파력도 혐오와 차별의 장벽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아서 여군으로서 나라를 지키겠다는 충정은 짓밟히고 말았다.

 

성전환 수술을 심신장애로 판단한 결정도 자의적이지만, 성전환 군인의 불허 이유로 분단국가 논리를 들먹인 것도 참 진부하다. 그런 대한민국의 국방부와 육군에게 묻는다. 진정 대한민국 젊은이에게 국방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을 기대하는가. 장교와 부사관, 그리고 병사들에게 조국에 충성하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그들에게 국가가 자신들을 인간으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 믿음과 확신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여전히 군인은 제복 입은 시민이 아니라 국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처럼 취급한다. 제복만 입었을 뿐 시민이어야 할 군인은 기본권에 제한을 가해도 상관 없는 존재로 여긴다. 군복만 입으면 사랑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동성애를 허용하면 군기가 침해되고 전투력이 약화한다는 이유다. 때로는 신념과 믿음도 굽혀야 한다. 성 정체성을 찾는 길은 막혀 있거나 험난하기만 하다. 대한민국 육군 하사 고 변희수가 그랬다. 그녀의 충성심은 짓밟혔고, 그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성 소수자로 인해 군 기강이 무너진다는 편견과 기우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나 군기는 성 소수자 때문이 아니라, 간간이 터지는 군납 비리와 방산 비리 그리고 갑질 지휘관들 때문에 흐트러진다. 병사의 철모와 방탄복부터 구조함까지 퍼진 검은 거래가 군 전력을 멍들게 하고 젊음을 불태우는 병사에게 자괴감이 들게 한다.

 

대한민국을 지키는데 성별이 그리도 중요한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전환자든 동성애자든 무슨 구별이 필요한가.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조국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가짐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그리도 좋아하는 미국을 보자.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성전환자의 군 복무를 금지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조치를 행정명령으로 뒤집었다. 성적 정체성이 군 복무를 막는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되며, 미국의 강점은 다양성에 있다는 이유다. 인권의 문제를 진보 보수의 틀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국방부와 육군은 그의 영전에 사죄의 뜻을 밝혀야 한다. 군대 내의 혐오와 차별의 장막을 걷어내는 획기적인 개혁과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것이 고 변희수 하사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길이며, 다시는 이 같은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길이다. 이미 때는 늦었지만, 그래도 복직으로 그의 못다한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사법부와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이 사안은 국가의 강제 전역 조치의 불법성을 드러낼 공적 이익이 있어 권리보호 이익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사안이다. 성별 정정도 인정했던 사법부 아닌가. 유가족의 소송 수계 신청을 받아들이고 국가의 부당한 전역 처분을 취소하는 적극적 사법을 기대한다.

 

 

하태훈 교수 (고려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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