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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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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증언은 ECCC에서 활발하게 이용되는 증거방법이지만 그 개별 증거가치에 대해서는 다양한 판단이 내려진다. 크메르루즈에 관하여 역사학, 인류학 등의 관점에서 접근한 일부 학자의 연구는 객관성 부족, 편향성 등의 문제가 지적된 반면, 해당 연구의 기초 자료가 특정되고 접근 가능하며 신뢰할 만한 것일 때에는 증거가치가 인정되었다.

 

예를 들어 크메르루즈 치하의 강제결혼에 관하여 천여 명을 인터뷰한 젠더학자는 당시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강제결혼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 상세하게 법정에서 증언하면서, 그러한 강제결혼이 크메르루즈 최고 지도자들의 정책에 따른 것이었는지 여부는 자신의 연구분야가 아니어서 확신할 수 없다고 답변함으로써 오히려 그 중립성과 전문성에 대해 재판부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최근 이른바 종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하버드 대학의 램지어 교수가 국제 법경제 관련 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을 둘러싼 비판이 계속되는 한편, 올해 초 한국 법원은 일본의 배상책임을 직접 인정하는 판결을 하였고 그 후 생존 피해자로부터 사건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하여 해결해 달라는 요청이 제기되고 있다.

 

학문적 연구는 일정한 한계를 지니지만, 증거조사 등으로 이를 포괄하여 구속력 있는 판단을 받을 수 있는 법적 절차야말로 국가 등에 의한 광범위한 인권침해 사례에 적합한 대응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강제결혼이나 강간, 성노예와 같은 성범죄는 199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국제형사범죄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였다. 그 전의 국제형사법은 전쟁과 관련하여 국가 정책에 따라 대규모로 벌어진 학살행위 등을 주로 다루었을뿐, 대부분의 전쟁에서 만연한 성범죄는 오랜기간 소추기관의 관심 밖이었다.

 

종군 위안부 문제 역시 도쿄전범재판에서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최대 8만명에 달하는 여성이 난징대학살에서 강간 피해를 입었음에도 패전국의 식민지였던 아시아, 그 중에서도 더욱 취약한 존재였던 여성 피해자들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1년에 이르러 '국제여성전범법정'이 모의재판을 열어 아시아 9개국 위안부 피해자들 64명의 생생한 증언을 듣고 일본 천황을 비롯한 전범들과 일본국에 대하여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하였을 뿐이다.

 

이와 달리 식민지 동인도(현 인도네시아)에 있었던 승전국 네덜란드 국적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이미 1948년경 자카르타에서 군사재판이 열려, 감옥에서 자살한 노자키 장군을 제외한 오카다 소좌 등의 군인, 통역사, 군의관 등 10여명에게 관여 정도에 따라 사형, 최장 20년의 유기징역, 무죄가 선고되었는데, 심리결과 강제성은 물론 취업과정에서의 일부 기망행위도 인정되었다.

 

이처럼 아시아의 종군 위안부는 국제 정치지형과 젠더 관점에서 가장 약자에 속하였기에 때로는 의도적으로 무시되기까지 하였던 피해자들의 기본적 인권을 국제사회가 뒤늦게나마 인식하게 된 대표적인 사례로서, 한국과 일본 양국 사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종군 위안부가 이미 행위 당시 유효하게 존재하였던(lex lata) 국제 강행규범(jus cogen) 위반의 문제라는 점에 대해 명확한 국제법적 승인을 얻기 위한 배전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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