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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프리즘

외국의 밥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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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 변호사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한국 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다 5년차 중반에 싱가포르에 있는 현지 로펌으로 이직했다.

 

해외 취업. 이게 그저 막연한 가능성이었을 때에는 '해외'라는 대목에서 이미 흥분하여 '취업'이라는 말의 무게를 정교하게 달아보지 않았었다. 그럴 만도 했다. 대학 시절 노팅엄에서 교환학생을 10개월, 연수원 마지막 학기에 런던에서 인턴을 2개월 했는데, 알프스 계곡 빙하수는 이런 맛일까 싶었다. 그 순수한 해방감과 즐거움의 원천은 밥벌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경험 자체가 그 시간의 목적이라는 사실에 있었다는 것을 이제 와서 새삼 절감한다.

 

싱가포르 이직이 결정되어 취업 비자 신청서를 읽어 내려가자니 술이 깨는 듯한 두통과 함께 현실감이 몰려온다. 변호사라도 외국인인 이상 고용주인 로펌의 스폰서십이 있어야 체류 자격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여느 외국인 근로자와 차이가 없다. 사장님이 어느 날 회사 그만 나오라고 하면 짐 싸서 나라를 떠나야 한다는 뜻이다(참고로 이 나라는 해고도 비교적 쉽다). 한국이었으면 고용이 끊겨도 나는 여전히 개업변호사겠지만, 외국에서 고용이 끊기는 순간 '불법체류자'를 향한 스톱워치가 켜진다.

 

근무를 시작하면서 찾아온 복병은 존재감의 위기였다. 싱가포르 현지 로펌 분쟁팀의 씨니어 어쏘. 외국 변호사로 법원에 나갈 수 없으니 연차는 높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다. 그렇다고 한국 변호사로서 한국 법에 대한 최종 의견을 줄 수도 없다. 보통법계 국가인 싱가포르에서 일을 하는데, 법률교육은 하필 대륙법계 국가에서 받았다. 이런 저런 제한들 속에서 나의 역할을 빨리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다. 부딪치다 보면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수도 있겠지만, 내 연차에 시행착오는 사치로 느껴진다는 게 문제다.

 

이렇게 우주 미아처럼 표류한 것이 이제 일년 반. 살겠다고 허우적거리는 와중에 소득이 있었을까. 좋든 싫든 드문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인데, 과연 그것으로 충분할까. 미련한 자아가 버릇처럼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밥벌이는 밑도 끝도 없다고, 아무 도리 없으니 꾸역꾸역 밥을 벌자고 하였던가.

 

 

전아영 변호사 (웡파트너십(WongPartnership LLP))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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