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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기본값과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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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나드 메이도프.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폰지 사기범인 그는 2009년 6월 29일 폰지 사기를 통해 미화 650억 달러 상당을 편취하였다는 범죄사실로 최고 150년 형을 선고받았다. 미국체조협회 여자국가대표팀 의사 래리 나사르는 20여년 동안 선수들의 위축된 근육과 힘줄을 마사지하면서 치료를 핑계로 성추행한 범죄사실로 2017년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다. 말콤 글래드웰은 '타인의 해석'(김영사, 2020)에서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메이도프의 범행이 어떻게 월가에서 들통 나지 않았는지, 나사르의 범행이 20여년 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다루고 있다. 그는 그 원인을 진실기본값(Truth-Default-Theory, TDT)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이 정직하게 자신을 대한다고 가정한다는 것이다. 충분히 의심하고 의심하여 더 이상 믿을 수 없을 때까지 계속 믿는다는 것이다. 상대를 대할 때마다 혹시 거짓말 하는지 의심하면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진화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2. 증거와 경험칙 등에 기초하여 냉철하게 구체적 사실을 파악하고 그 사실에 법률을 적용하여 타당한 결론에 이르러야 하는 재판에서는 어떨까? 재판에서는 혹시 거짓기본값(False-Default-Theory, FDT)이 작동원리 아닐까. 자신은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진실만을 이야기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법정에서 열심히 경청하고 공감하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그 모든 주장들을 하나씩 의심하고 의심하여 무엇이 진실에 가까운지를 찾아가는 것이 재판이다. 개별 증거의 증거가치와 신빙성을 따져서 어떤 증거가 진실에 가깝고 어떤 증거가 먼 가를 밝혀서 가능한 한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작업이 재판이다. 만일 말콤 글래드웰의 주장이 맞는다면, 법조인은 일상에서는 진실기본값으로, 재판 관련해서는 거짓기본값으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 슬프기는 하지만.

 

이동근 변호사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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