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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청년시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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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남편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남편은 이성적·문제해결적 성향을 가졌지만, 나는 감정과 정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사고가 발생하면 남편은 ‘그래서, 보험은 들었어?’라고 묻는 타입이고, 나는 ‘괜찮아?’를 먼저 묻는 타입이다. 이 상황에서 나는 ‘보험은 들었어?’라는 말을 들으면, ‘이 사람이 내가 괜찮은지는 전혀 관심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남편은 ‘전화를 했으니 일단 큰 부상은 아닐테고, 그럼 후속조치를 해야 하니 보험을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오히려 ‘괜찮아?’라는 물음은 꼭 필요한 물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끔은 이 간극이 서로를 낯설게 만든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었음에도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고, 작은 오해들이 쌓이기도 한다. 분주한 일정에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때에는, 작은 일이 마치 큰 일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면서 우리는 서로의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하는 방식을 차용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분쟁의 상황에서도 이런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사안 자체의 중대성이 문제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첨예한 분쟁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비단 작은 분쟁에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격론이 오갈수록, 거래의 규모가 클수록, 그 문제의 시작과 증폭 과정에는 의사소통의 오류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시작된 작은 오해가 불신을 키워가기도 하고, 배려 없는 말들이 쌓여 관계를 끝내기도 한다. 때로는 ‘이럴만한 일이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되뇌며 힘든 시간들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오해의 시간은 서로를 이해하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오래 보아야 하거나, 중요한 일을 함께하는 관계라면 한 번쯤은 이런 과정을 겪기도 한다. 그때, 우리는 고민하게 된다. 문제를 직시할 것인가, 그냥 넘어갈 것인가. 모든 상황에서 불편함을 하나하나 드러내며 상대와 맞설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런 방식은 또 다른 분쟁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다만 상대방의 언어가 지속적으로 이해되지 않고, 그로 인한 문제가 증폭될 것이라고 예상되는 경우에는, 왜 그런 방식을 사용하는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상대방의 언어가 사안을 대하는 방식이 나와 너무 다른 것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초기에 정리되기도 한다. 그 과정을 넘어서는 순간 서로에게 더없이 소중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언어는 여전히 다르다. 그래서 우리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상대방의 언어를 오해하거나 쉽게 상처받지 않도록, 그리고 나 역시 상대방과 제대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런 일들이 때로는 피곤하고, 불필요한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관계일수록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언어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전별 변호사 (K&Partners 변호사)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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