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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비규어스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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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사람이 춤춘다. 빨간 수트를 입고 투구를 쓴 남자가, 검은 주름치마를 입고 정자관을 쓴 남자가, 색동 저고리에 반바지를 입은 여자가.

 

그들의 춤은 장르로 규정하기 어려우며 춤추는 동안은 성별의 구분도 거부하는 것 같다. 어떤 해석도, 의미 부여도 춤추는 우리에게 하지 말고 보는 너희들이 가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춤추는 그들의 이름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우연한 기회에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에 맞춰 춤추는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춤을 보는 것은 충격이었다. 신나는 충격이었다. 작은 폭죽들이 연이어 터지는 것처럼 아름답고 흥미로웠다. 말과 글이 의사소통의 도구이듯 춤도 인류에게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의사소통의 도구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춤으로써 말한다. "내 춤을 규정하지 마"라고, "내 성별을 규정하지 마"라고. 결국 "나를 규정하지 마"라는 외침으로 들린다. 보이는 것, 드러나는 것, 외모나 성별을 통해서 내면을 규정당하기를 그들은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춤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함부로 규정하고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 하여, 삶에 대해서. 타인의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쉽게 타인의 삶을 규정하고 평가하곤 하는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려고 노력한 적 없으면서도 얼마나 쉽게 타인의 인생을 재단하고, 이야기 거리로 소비하는가. 그럼에도 누구나 그런 재단의 대상이, 소비의 대상이 되기는 싫을 것이다. 내가 당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말자. 존재 자체를 평가하고 재단하지 말자.

 

법조인은 직업의 속성상 어쩔 수 없이 타인 인생의 중요 장면을 알게 되고, 평가하게 되기도 한다. 그것은 법적 평가에 그쳐야겠다. 우리는 우연히 타인들의 눈에 띈 어떤 장면으로 규정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존재, 애매모호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여섯 사람이 추고 있는 규정하기 어려운 춤, 애매모호한 춤. 앰비규어스 댄스, 그것이야말로 인생이 아닐까. 그들의 춤을 더 보고 싶다.

 

 

장소영 통일법무과장 (법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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