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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청년시대

형사 변호에 임하는 변호인의 태도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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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해가 지나 재작년이라고 해야겠다. 재작년 12월의 주말이었다. 거실 소파에 누워서 아무 것도 안하고 있었지만 좀 더 아무 것도 안하고 싶은 그런 밤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아들이 체포되어 경찰서에 있는데 변호사가 필요하다는 전화였다.


나는 형사 전문이지만 형사 사건을 수행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억울한 피의자, 피고인도 분명히 있지만 대개는 수사기관이 죄 없는 사람을 잘못 조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단한 안내와 함께 전화를 마무리했다.

사건을 맡고 싶지 않아하는 태도가 오히려 장사(?) 하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한 시간 여가 지난 뒤 다시 걸려온 전화에 나는 주말 저녁을 포기하고 경찰서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라고 해도 되려나. 20대 초중반의 친구니까 이런 지면에는 뭐라고 옮겨야 할지 모르겠다. 의뢰인이라고 적기에는 그동안 마음을 많이 썼으니 그냥 ‘이 친구’라고 하고자 한다.

이 친구가 처음 얘기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이런 일을 했고 저런 일을 했고 이렇게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을 했는데 이건 아마 경찰이 모를 것이고, 저런 일을 했는데 이건 아마 누가 진술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누구든 자기의 죄를 부인할 권리가 있으므로, 이것을 어찌 말리겠냐만 일단 조사를 받아보고, 다시 얘기를 해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날 밤 접견은 그렇게 마쳤다.

바로 다음 날 오전 조사에 참여했다. 아… 이 친구가 연루된 사건이 뭔지 언급하지 않았다. 이 친구가 연루된 사건은 마약 사건이었다. 질이 좋지 않은 사건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본인이 투약은 하지 않았다.

지금은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가 마포동으로 옮겨 시설이 아주 훌륭하지만 그 조사 당일까지만 해도 엄청 허름한 곳에 있었다. 조사 시작 전부터 국민 세금으로 이런 곳 지원 안 해주고 뭐 하나란 생각이 들었다.

포승줄에 묶인 상태로 이 친구가 도착했다. 간밤에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았다. 조사 시작 전에 잠깐 대화를 했다. 아직은 내 생각을 막 얘기할 때가 아니었다. 피의자들은 대체로 수사기관이 아는 바를 너무 낮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냥 조용히 듣기만 했다.

조사가 시작되자 이 친구는 부인하기에 바빴다. 담당 수사관은 아주 스마트했고,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이 친구는 아직은 뭔가 희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본인이 무혐의로 풀려날 수도 있다는 기대 같은 것.

나는 이 친구를 위해 싸우는 전사이므로, 중간 중간 개입이 가능한 지점에서는 이 친구를 위해 절차적 권리를 언급하고, 부정확하게 진술한 내용을 정정하고자 하였으며, 지나친 추궁을 삼가도록 요청을 하였지만, 이 모든 것은 이 친구에게 부족한 것이었다. 내 주관으로는 이러한 변론은 진정으로 피의자를 위하는 변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담당 수사관은 이 친구가 부인하는 내용을 반박하는 자료들을 제시하였고, 그때서야 이 친구는 잠깐의 쉬는 시간을 요청하며 다시금 나와 얘기하기를 원하였다. 이제 내가 진짜 변론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어려운 내용이 아니었다. 다른 모든 변호사님들께서 다 잘 아실 것 같은데 변호사가 보는 이런 지면에 이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부끄럽지만, 그래도 내용을 조금 옮겨본다.

다들 아시다시피 마약 사건은 결국 수사기관에게 상선을 제공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의 조직화된 마약 범죄의 경우, 다크웹을 통해 주문을 받고, 대화 내역이 자동으로 삭제되는 채팅 앱을 통해 공모하며, 그 대금 역시도 가상화폐로 받으므로, 그 조직의 총책 및 구조, 범행수법 등을 파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그 내부구조나 마약을 보관하는 곳, 사람 등에 대한 관련자의 진술이 많이 중요하고, 이것이 마약 사건의 변호(단순 투약자의 경우는 당연히 제외한다)에 있어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혹자들은 마약 범죄의 경우, 많은 부분이 드러나 있지 아니하고, 수사기관 역시 관련자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기대어 진술거부하거나 부인하는 형태로 그 책임을 떠넘기려고 한다. 나는 아직도 왜 이런 변론을 하는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결국 마약 사건의 경우, 사실 마약 사건이 아니라 본인이 범죄를 저지른 것이 맞다면, 그 사실 자체를 빨리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형사 변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백은 단순히 자기 죄의 인정에 그쳐서는 안된다. 이 경우 공적이라고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자백은 더 억울한 상황을 면하는 훌륭한 방어방법이 되기도 한다. 이 사건의 경우가 그러하였다.

이 친구는 본인이 자백을 하더라도, 무엇을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내 조언이 필요한 지점이었다. 그리고 입장을 바꿔 그렇게 진술을 시작하자, 어느 정도 조사가 이뤄진 뒤 담당 수사관 및 이를 듣고 있던 다른 경찰들이 ‘이제는 너를 챙겨주겠다.’라는 태도로 이렇게 말을 했다.

“우리는 사실 네가 총책(이 사건에서 달리 부르는 명칭으로 불렀다)인 줄 알았다.”

이 친구가 계속 부인했다면, 형사 조사의 과정도 많이 꼬였을 것이다. 실체 진실을 발견하는데 한계도 있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이 친구는 수괴로서의 책임을 부담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한동안 조사가 계속 된 후, 이 친구는 그 날 저녁에 풀려났다. 구속영장이 청구되지 않은 것이다. 그 이후 약 1년 여간 내가 많이 괴롭긴 했다. 이 친구에 대한 조사가 계속 되었는데, 그 때마다 적절히 조언을 해야 했고, 그 밖에도 이 친구로부터 본인이 구속되는 것은 아니냐는 연락, 다른 공범들이 모두 본인을 총책으로 몰고 있는데 어떻게 하냐는 연락 등을 받았는데, 그 연락은 심야에도 있었으므로, 나중에는 내가 화를 낼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서로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이 친구를 제외한 나머지 공범 전원이 이 친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지만 수사기관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수사 초기에 수사기관에게 심어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공범들을 변호한 다른 변호사님들의 변론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범죄혐의를 부인하는 취지의 증인신문을 하기 위하여 이 친구를 증인으로 신청하였기 때문이다.

결과를 얘기하자면, 관련자 중 수사과정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구속되지 않은 자는 이 친구가 유일했다. 이 친구보다 범죄 가담 정도가 경미한 1명마저도 구속되는 등 나머지 공범 전원이 수사과정 중 구속되었다. 그리고 범행 가담 정도가 경미했던 위 1명 및 이 친구만 형의 집행을 유예받았고, 나머지 공범들은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검사도 항소하지 않아 확정이 된 후, 이 친구는 이제 내게 더 연락을 하지 않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한다. 재작년 12월부터 얼추 1년 여 만에 결론이 났는데, 나는 무죄를 선고받은 다른 사건들보다 이 사건이 오히려 진정으로 형사변론을 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한 공적 조회가 좀 인상깊었나보다. 관련 공범 중 1명의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공적 조회에 대해 물으며 사건을 맡기고 싶다고. 사건 자체야 내가 잘 알지만, 이해가 충돌할 수도 있고, 수사단계부터 관여하지 아니한 피고인의 변론을 하는 경우,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답을 드렸다. 이미 언급하였지만 나는 형사 사건을 수행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형사 전문 변호사로 일을 하고 있지만 난 변호사가 수사기관과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체진실의 발견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 일하는 것은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부여받은 일종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수사기관도 결국 사람이므로, 오판할 수 있다. 업무량이 과도하고, 모두 주워담을 수 없을 때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한 오판이 있는 지점에서는 무죄를 적극 주장하여야 할 것이나, 이것이 마치 의도된 잘못인 양 대하며 변론을 하고 싶지는 않다. 틀린 변론이기도 하다.

형사 변론의 꽃은 피의자, 피고인에게 상황을 정확히 인식시키고, 수사기관과 협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오히려 의뢰인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변론이라고도 생각한다.

때로는 피의자, 피고인이 사회적으로 살기 위하여 변호인마저 기망하고, 나중에는 본인마저 속여가며 계속 부인만 하는 경우가 있다. 그 끝에 만나게 되는 것은 결국 거짓말 투성이인 본인 때문에 무너져내리는 본인이다. 형사 변호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의뢰인이 그러한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며 새해에 다시금 변호사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잡을 수 있었다. 이런 기회를 허락해주신 법률신문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글을 마친다.


김연기 대표변호사 (법률사무소 이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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