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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마음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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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철학입니다. 게으르고 멍때리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는 퍽 어울리는 일입니다. 홀로 즐기는지라 누구에게 떠벌리지는 않지만, 묻는 사람들에게는 하이데거를 말합니다. 플라톤이나 칸트는 너무 쉬워 보여 밑천을 다 드러낼 것 같아서입니다. 너무 당연한 것을 너무 어렵게 말하는 하이데거는 사람을 침묵하게 합니다. 말하는 나도 듣는 상대도 도통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정작 알지도 못하면서 떠드는 내게 이 철학자는 허언증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이데거의 개념 중에 '조르게(Sorge)'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근심'이나 '걱정', 영어로는 'anxiety'나 'concern'으로 번역되는데, 하이데거는 좀 다른 의미로 씁니다. 짧은 소견으로는 죽음을 염려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정도로 이해합니다. 살아있는 것은 제가 무화(無化)되는 것을 피하고자 뭔가를 한다는 것이지요. '조르게'와 같은 말은 고사하고 비슷한 말이라도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데, 철학자들은 '마음씀'이라고 번역합니다. 참 멋진 번역어입니다. 순우리말이고, 우리가 평소에 쓰는 살아있는 말입니다. 그냥 들어도 대강의 뜻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판사로서 형사재판을 하면서도 형법이 개정된 것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법령 적용을 잘못한 게 있나 하는 생각에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다행히 시행일은 금년 말이고 내용도 실질적으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한자어나 어려운 표현을 쉽게 풀어쓴 것이었습니다. 철학이든 법률이든 쉬운 말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문제는 그 정도입니다. 전문용어나 한자어를 어디까지 풀어쓰느냐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법률가는 폭행을 4개로 나누는데도, 이를 단순히 '때림'이라고 풀어쓴다고 해서 그 의미가 명확하게 잡힐 리는 만무합니다. 순우리말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큰 어려움 없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법률 개정이 '마음씀'과 같은 멋진 번역어를 찾기를 기대합니다.

 

 

김태균 판사 (수원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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