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법조광장

선택적 삶

167431.jpg

흔히 가까운 야산에서 볼 수 있는 다람쥐는 사람들에게도 친숙하다. 그래서 우리의 동요나 동화에 자주 등장해 오곤 했다. 대개의 동물들은 필요할 때만 먹이를 구하는데 반해 다람쥐는 먹이를 저장해 두었다가 먹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다람쥐의 볼주머니는 탄력이 좋아 도토리나 밤을 몇 개씩 담아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다람쥐는 욕심이 많아 먹이를 이곳저곳에 저장하고 숨겨 놓기만 할 뿐 모두 찾아서 먹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듬해 산 곳곳에서는 다람쥐가 감추어 놓은 도토리나 밤들이 씨앗을 터 나무로 자라게 된다. 이렇게 어리석게도 모아 놓기만 하는 것이 다람쥐뿐이겠는가. 

 

우리나라에 성년후견제도가 시행된 지 7년이 되어 간다. 법원으로부터 성년후견개시 심판에 의해 전문가 성년후견인·후견감독인으로 선임되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사건본인에 대한 재산을 파악하는 일이다. 다행히 금융감독원이 제공하는 상속재산일괄조회서비스를 통해 사건본인의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조회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런데 당사자가 재판 중에 법원에 사건본인의 재산이라고 신고한 것과는 다른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가족들이 모르는 부동산과 금융재산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경우가 있다. 사건본인은 다람쥐처럼 여기저기 재산을 모아 놓기만 했지 그것들을 필요할 때 써 보지도 못하고 오히려 자식들이 상속개시도 되지 않은 재산을 놓고 갈등을 겪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다람쥐가 숨겨 놓았던 먹이들은 차라리 씨앗이라도 틔워 나무로 자라게라도 하지 무엇 때문에 그 고생을 했을까 하는 가련한 마음까지 든다.

 

얼마 전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웃 나라 일본에서 치매환자 소유 금융자산이 전체금융자산의 10%가 넘어 2017년 143조엔, 2030년엔 215조엔으로 늘 것으로 전망돼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은 치매환자가 약 80만 명으로 추산은 되지만 치매환자들의 묶여 있는 잠자는 자산이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하는 문제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치매는 환자 본인의 자아상실과 함께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산도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돈도 내가 쓸 수 있을 때 쓰는 것이 돈이지 다른 사람에게 맡겨져 쓰여 되게 진다면 과연 보람이 있기라도 한 건가.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쓰는 것도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고 있으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 인간인가 싶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그중에 경제생활에 있어서의 선택은 돈을 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어서 어떤 선택을 하여 쓰느냐에 따라 그의 삶도 다르게 평가 된다고 본다.

 

김 노인은 올해 93세이다. 1·4후퇴 때 혈혈단신으로 월남하여 부산국제시장을 거쳐 서울이 수복된 후 서울역 등지에서 지게 품팔이를 하다가 남대문 시장에서 포목상을 하여 큰 돈을 벌었다. 뽕나무 밭이던 잠실에 땅을 사놨는데 그곳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땅을 팔게 되어 '이제는 좀 더 먼 곳으로 가서 땅을 사면 괜찮겠지'하고 그 돈으로 경기도 광주시와 인접한 황산에 다시 땅을 샀는데 거기도 얼마가지 않아 고덕지구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면서도 김 노인은 돈을 쓰지 않고 여기저기 땅을 사고 남은 돈은 은행과 증권에 쌓아 놓기만 했다. 2남 3녀의 자식들을 독립시키고 부부가 둘이서 생활 살다가 5년 전 부인을 암으로 먼저 떠나 보냈다. 심한 우울증을 앓던 김 노인은 치매까지 걸렸는데 평소 관심을 두지 않고 왕래도 없던 자식들이 아버지의 치료는 뒷전인 체 혹시 다른 형제들이 재산을 빼돌리기라도 할까봐 의심을 하던 중 법원에 성년후견개시신청을 하게 되었고 형제간 다툼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 법원은 전문가 후견인을 선임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멀쩡하게 살아 있음에도 그 재산을 놓고 형제들이 다투는 것을 보면서 후견인이 할 수만 있다면 사건본인의 잔존의사능력을 최대한 반영해 정말로 어디 자선단체에 기부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속 좁은 나만의 못된 생각일까.

 

2021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었다 해도 주변에 변한 것은 없다. 코로나는 여전하고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사정은 쉽사리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차라리 내가 변하여 선택적 삶을 사는 게 순리일 것 같다.

 

 

이각휘 법무사 (서울중앙회·서울가정법원 성년후견인)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