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法臺에서

167294.jpg

새로운 것을 접하게 되면 내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그와 가장 비슷한 것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전기자동차를 처음 보았다면, 알고 있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교해서 무엇이 다른지 이해하는 식이다. 만약 내가 말을 타던 시대에서 넘어온 시간여행자라면 자동차를 이해하려고 마차나 수레를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그 아득한 차이만큼 이해의 속도나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재판을 해야 하는 사건은 내가 가진 경험을 묻지 않고 온다. 작물을 키워본 경험이라고는 초등학교 숙제로 강낭콩을 길러본 것이 전부이지만, 복숭아 농사를 망친 원인이 농약인지, 비료인지, 농부의 잘못인지를 가려내야 한다. 이 사건에서 공부를 마치고 나면, 다음에 올 비슷한 분쟁에서는 이 사건이 이해의 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식으로 가지고 있는 틀이 나도 모르게 하나둘 늘어난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틀은 한계가 분명하다. 처음부터 어딘가 부서지고 망가진 상태의 사실관계에서 출발했고, 그 부서진 부분에 집중해서 연구한 결과물이다. 부서졌던 부분을 도려내고 나머지를 조합하는 방법으로 온전한 상태를 구성하기가 쉽지 않다. 복숭아에 농약을 잘못 치면 병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해도 복숭아를 제대로 키워내는 법은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음에 복숭아 농사를 망친 다른 사건이 온다면, 왠지 그나마 알고 있는 농약이 또 문제가 아닐까 자꾸만 눈길이 갈지도 모른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틀을 가지게 되는 것이 분명 새로운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자칫하면 틀 자체가 예단이나 편견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새로운 사안이 예전의 틀에 맞춰지면 이해가 쉽고, 문제를 풀어내기도 수월하다. 어떨 때는 내가 가진 경험에서 무언가 본질을 꿰뚫는 지혜가 생긴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런 쉬운 길에 대한 유혹이나 경험의 가치에 대한 과대평가가, 새로운 것을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열린 생각을 방해할 수 있다. 어떤 사안을 잠시 들여다본 후에 '이것도 마찬가지군'이라는 생각이 들면, 혹시 나도 모르게 망가진 틀을 들고 사실관계를 뭉텅 잘라내버린 것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황성욱 판사 (상주지원)

미국변호사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