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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정인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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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 저릿하고 먹먹하다. 약하디 약한 어린 생명이 얼마나 아프고 두려웠을까. 부모를 강하게 처벌하라는 청원이 넘치고, 당장 관계자들의 책임을 물으라는 요청이 빗발친다. 국민적 공분을 업고 초스피드 입법과 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국회는 며칠 사이에 아동학대처벌특례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켰다. 이렇게 뚝딱 만들 수 있는 법안으로 정인이를 구할 수 있었다면 진작 했어야 할 일을. 

 

민식이법 때도, 김용균법 때도 그랬다. 국민적 관심을 끄는 커다란 사건이 터지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분노를 표출하고 책임추궁에 나섰다. 국회와 담당부처에서는 놀랄 만큼 빠른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책임추궁이 뒤따랐다. 계속적 분노는 건강에 나쁘니 이 정도 약 드시고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처방일까.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망각의 편안함에 빠져들고 싶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일까. 

 

특정 사건에 대한 공분을 기반으로 한 벼락치기 입법, 감정과잉 입법은 보편성과 형평성, 합리성을 가진 훌륭한 법이 되기는 힘들다. 특정 사건은 제도 개선의 계기가 될 뿐, 그러한 사건에 대한 반응이 섣불리 제도로 이어지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다. 일찍이 홈즈 대법관은 '큰 사건은 나쁜 법을 만든다(Great cases like hard cases make bad law)'는 법언을 인용하면서 적절히 설명하였다. 이러한 사건은 당장의 엄청난 관심으로 감정에 호소하고 판단을 왜곡시키게 된다(Northern Securities Co. v. U.S. 1904).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형벌 강화, 즉각적인 학대아동 분리와 같은 대증요법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으로 등장하였다. 다행히도, 형벌을 높일 경우 실제 처벌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거나 안전한 아동보호시설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즉시분리는 개악될 수 있다는 지적이 반영되어 개정 법률에서 제외되었다. 처벌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아동보호기관, 의료기관, 수사기관, 자치단체가 유기적으로 협조하면서 아동학대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 그것도 약자 중의 약자인 어린아이의 생존을 다루는 문제라면 더더욱 세심하고 차분하게 원인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현장의 전문가들을 통해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꼼꼼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형식적 법이나 그럴듯한 제도에 가려진 실상을 확인하고 공백을 찾아내어야 한다. 가정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공적 개입의 한계와 가능성도 면밀히 따져보아야 한다. 전문성과 지속성, 디테일이 필요한 힘든 싸움이다. 

 

아동, 장애인, 외국인, 누구든 존귀한 인격체로 대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한 아동학대를 근절하기는 어렵다. 마녀사냥 식의 공격과 혐오가 판치는 사회에서 아동만 안전하게 살아남을 방법은 없다. 들끓는 분노가 무관심으로 식어 갈지, 아니면 변화의 동력으로 지속될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홍기태 원장 (사법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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