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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좋은 재판'의 출발은 반성·성찰과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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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심 징역 4년이 합당한지 재판 결과에 대한 여론조사가 있었다. 재판부를 탄핵하라는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윤석열 징계 집행정지 재판부에 대해서는 '일개 판사', '법적 쿠데타'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맹비난한 유명 방송인도 있었다. 여론조사의 대상이 된 재판 결과, 법관 개개인이 공격의 대상이 된 사법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날로 격화되는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법원으로 홍수처럼 밀려들면서, 특히 정치의 사법화가 심화하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그 중에서도 여론조사는 최악이다. 민심의 향배를 알아보려는 것이지만, 사법부 판단의 옳고 그름을 여론조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판결 자체가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여론으로 정당성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1심이든 대법원 확정판결이든 재판 결과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불만이 있으면 불복하면 된다. 근거 있는 정당한 비판은 허용된다. 이것이 민주주의 원리이자 법치국가의 기본이다. 판결이 나면 논란은 일단 멈춰야 하지만 판결선고와 함께 논란은 다시 증폭되고, 판결 결과뿐만 아니라 판사 개개인의 신상이 털리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사법 불신이다. 왠지 믿고 싶어도 믿음이 가지 않는 사법부.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독재 권력 하에서 사법부(司法部)라는 오명도 있었지만, 결정타는 사법농단과 재판거래다. 민주화 이후에 공정하고 정의로운 재판을 위해 온 힘을 다해서 오명을 벗어 버리려는 순간 다시 도진 사법부(司法部)로의 회귀 때문이다. 정말 법과 양심에 따른 판단일까, 신뢰해도 될까 하는 의심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신이 퇴적층처럼 쌓여 씻겨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원 스스로도 판사들의 재판개입 사실은 헌법상 요구되는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한 것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으니 남용도 없다는 형식논리로 직권남용 무죄판결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사법농단이 사법 불신의 주범이다. 재판을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자들 탓이다.

 

앞으로 '좋은 재판'을 하겠다는 언약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신년사에서 짧게 언급한 통렬한 반성과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청산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재심에서 밝혀진 오판도 마찬가지다. 재판장이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당사자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뒤에 따라야 한다. 

 

사법의 힘은 막강하다.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한 징계 재가도 정지시킬 수 있다. 미국 대선이나 우리의 총선에서 보듯이 당선무효형을 선고하면 유권자의 표심도 뒤집을 수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는데, 선출되지도 않은 사법 권력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정당성은 어디에 있는가. 사법 신뢰에서 나온다. 정치적 다수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신뢰, 법 외적 요소에 좌우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법규범에만 구속된다는 믿음, 법관 개개인이 비당파적이고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신망, 누구도 재판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고 언론과 여론이 무어라 떠들어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서 나온다. 상고 제도 개선, 전관예우 방지도 중요하지만, 사법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가 우선이다. 불신의 원인을 알고 있으면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격화소양(隔靴搔?)은 미봉책이자 임기응변이다. 발 등이 가려우면 과감하게 신발을 벗어버리고 긁어야 시원해진다. 적당히 덮어두어 '사법농단'이라는 낙인이 언제라도 불쑥 소환되게 해서는 안 된다. 사법농단 재판거래의 피해자들은 하루하루 고통스러운 시간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에 책임지는 이는 하나도 없다. '좋은 재판'의 출발은 사법농단과 재판거래에 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책임을 묻는 작업에 있다.

 

 

하태훈 교수 (고려대 로스쿨)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