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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나의 禮誼, 너의 禮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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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시대라 하자. 비 내린 직후라 땅이 질척거렸다. 맞은편에서 친구 아버님이 말 타고 오고 계셨다. 얼른 말에서 내려 인사하려 했더니 손사래를 치신다. "아이고, 진흙탕인데 내리지 마라, 옷 버린다. 뭐하려고 내리려고 하느냐, 그냥 말 탄 채로 인사하면 되지" 하시면서 기어코 못 내리게 했다. 하는 수 없이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드렸다. 아버님이 허허 웃으시면서 기분 좋게 가셨다. 며칠 후 친구 녀석이 와서, "너 무슨 실수했냐"고 한다. 아버님께서 나를 버르장머리 없는 놈, 건방지게 말에서 내리지 않고 고개만 까딱하고 지나가는, 배운 바 없는 놈이라고 하셨단다.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그게 아니라 땅이 질척거리니 내리지 말라고 하셔서 시키는 대로 한 거라고 했다. 친구가 자초지종을 알아보겠다고 하였다. 

 

2. 아들이 집에 오더니, 내게 물었다. 친구 말에 의하면 아버지께서 땅이 질다고 내리지 말고 인사하라고 하셨다는데, 왜 버릇없다고 하시느냐고. 그래서 말해주었다. "내리지 말고 편하게 인사하라는 건 나의 禮誼, 그래도 내려서 인사해야 하는 건 그의 禮儀." 

 

3. 식당 들어갈 때 먼저 가서 문을 잡고 윗사람이 들어가시도록 해야 하나, 앞서 갈 수는 없으니 윗사람이 문 열고 들어가도록 뒤에 서있어야 하나, 윗사람은 식당 좌석 중 어디 앉아야 하나, 차 순위의 자리는 어디인가? 예전에 동료들과 '아부와 아첨과 아양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결론은? 어쨌든 다 좋아한다는 것이다. 해서 손해 볼 건 없는, 나의 禮儀. 

 

4. 법정에서 사건 호명 뒤 출석한 변호사들 대부분이 판사가 앉으라고 할 때까지 선 채로 기다린다. 앉으라고 해야 앉는 이유는 뭘까? 바람직한 재판운영방안(재일 94-1)은 2008년 8월 26일 폐지되었는데. 아름다운 전통의 법정예절? 판사가 메모지 보면서 한참 진행하다가 고개 들면 앉으라는 말을 듣지 못해 계속 서있는 변호사들도 있다. 이쯤 되면 아름다운 미풍양속의 단계를 넘어선 게 아닐까? 그래도 변호사의 禮儀인가?

 

 

이동근 부장판사 (서울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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