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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휴지가 될 피의자신문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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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계속 되고 있는 공수처법의 개정과 함께 검경수사권조정에 따른 형사소송법의 개정 내용이 새해가 되면 본격적으로 시행되어 형사사법체계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 그 중에서 여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해서도 피고인이 법정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증거능력이 부정되게 된다. 

 

물론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해 피고인이 내용을 인정할 때에 한하여 증거로 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 제312조 1항의 개정 내용은 2022년 1월부터 시행되지만 영상녹화물 등 객관적인 방법으로 성립의 진정을 증명할 수 있다는 제312조 2항이 곧 삭제되므로 피고인이 검찰에서 자신이 진술한 대로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증거능력을 인정할 다른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피고인이 내용을 부인하는 경우와 같아져 버린다.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해서 피고인이 당시 그렇게 진술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용이 진실이 아니라며 내용을 부인하기만 하면 바로 증거능력이 부정되었는데, 이제는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도 똑같이 피고인의 의사에 따라 휴지가 될 운명이다. 이것이 검경수사권조정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고 피고인의 인권보장에 엄청 기여할 놀라운 개혁인지는 강한 의문이 든다. 

 

당초에 너무 급격한 변화를 우려하여 개정 형사소송법의 공포 후 4년내 시행으로 꽤 긴 준비기간을 두었으나 법원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보였다고 한다. 피고인의 법정 진술에 따라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고 다른 유죄 증거가 부족한 경우에 그냥 무죄를 선고하면 된다는 것인가.

 

물적 증거가 거의 없는 사건의 경우나 공범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까지 휴지가 되고 범죄의 우두머리로 갈수록 진술증거 밖에 없을 가능성이 높아서 이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모르겠다. 한정된 구속기간으로 인해 법정에서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에 재판의 지연은 계속되고 법정은 거짓말 대잔치가 벌어질 것이 뻔하다.

 

거의 사문화되어 있는 조사자증언제도를 활성화하거나 증거보전청구의 대상을 피의자신문에도 확대하고, 영상녹화물에 대한 독립적인 증거능력을 인정하거나 미국 등에서의 플리바게닝이나 증언자면책과 같은 제도의 도입을 지금이라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경찰 작성 피의자신문조서를 무시하였기에 이를 개선할 방법을 강구하지 않고 오히려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까지 휴지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과연 온당한 조치란 말인가. 별다른 준비도 없이 공판중심주의와 피고인의 인권보장을 외치다가 무죄를 받은 피고인이 재판을 비웃게 되고, 피해자들의 분노와 국민들의 사법불신은 과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도대체 공인된 국가기관에서 합법적으로 작성한 조서이고 피고인 스스로도 진술대로 기재된 것은 맞다고 인정하는데도 "거짓말했다"는 말 한마디에 휴지취급을 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이창현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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