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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취재수첩] '신속재판' 격세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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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일본 판사들이 우리나라 판사들에게 어떻게 재판을 그렇게 빨리하는지 물어보고 한국에 와서 배워가던 시절이 있었는데, 씁쓸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네요."

 

일본이 심각한 장기미제 사건 적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3년 '재판 신속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데 이어 각종 세부 통계 등을 꾸준히 관리·공개하며 '신속한 재판'이라는 목표 달성에 매진하고 있다는 본보 보도(2020년 12월 21일자 1면 참고)를 본 전직 고위 법관의 말이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재판 신속화를 추진하기 위한 필요한 사항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법원에서 사건 처리 절차에 필요한 기간의 상황, 사건 처리 장기화 원인 등 기타 필요한 사항에 대한 조사 및 분석을 실시해 재판의 신속화에 관련된 종합적·객관적·다각적 검증을 실시하고 있다. 검증 결과는 2년마다 국민에게 공표하고 있다. 그 결과 일본의 재판 속도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까지 도달했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다양한 통계 수치를 추출하고 이를 분석한 뒤 공개해 검증 받는 일련의 시스템을 통해 달성한 성과이다.

 

우리나라 상황은 어떤가. 매년 '사법연감'을 발행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민사·형사·행정 등 사건 접수·처리·결과에 치중돼 있고 더 구체적인 통계지표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올해 발간된 사법연감은 특정인의 소송남발이 그대로 반영돼 민사본안소송 항소심 처리율과 상고심 파기율이 왜곡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최근 OECD가 발간한 '디지털경제 전망 2020'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5G 이동통신과 광인터넷 등 디지털환경에 대한 접근과 연결성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로 조사됐다. 반면 일본은 아직도 팩스 문화를 버리지 못할 정도로 아날로그형 국가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다양한 사법통계를 추출하고 공개해 검증 받고 있다. 사법통계는 우리 사법서비스의 현실을 나타내주는 바로미터이다. 구체적이고 정밀할수록 더 많은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고 그만큼 더 국민 편의를 높일 수 있는 대안 마련의 계기가 된다. 양이 아닌 질적 개선이 시급하다. IT강국 이름에 걸맞은 사법연감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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