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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법관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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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사법부 내부에서의 법관 독립성 침해가 이슈화되면서 주목받았던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다시 한 번 뉴스의 중심에 섰다. 이번에는 검찰의 판사에 대한 정보수집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인지, 이에 대한 의견표명을 할 것인지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다.

 

법관대표회의에서 관련된 원안과 수정안은 표결 결과 모두 상당 수 표차로 부결되었다고 한다. 법관의 독립성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려는 일체의 시도를 반대한다는 의안,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한다는 의안은 물론 재판의 대상이라 의견표명을 하지 않는다는 의안조차 부결되었다. 결과적으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으니 '법관의 침묵'이란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그러나 침묵할지 안 할지 치열하게 논의한 끝에 나온 침묵은 적극적인 의견표명 이상의 의미와 무게를 가질 수 있다. 이를 그저 정치적 무관심이나 주저함, 나약함으로 여길 수 있을까.

 

오히려 아전인수의 태세를 갖춘 정치권에 대하여, 누가 이겼는지 승패에만 관심을 가진 언론에 대하여, 포용보다는 배격을 추구하는 극단주의에 대하여 침묵으로 항변하고 있다. 정보수집 관련 의안을 잠시 덮어놓을 만큼 더 근본적이고 심각한, 법관의 중립성에 대한 위협이 존재한다고. 법관을 내편 네편으로 가르는 것이야말로 사법의 독립을 본질적으로 해치는 것이라고. 정치와 여론의 영향으로부터 휘둘리지 않겠다는 독립 선언을 침묵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고. 

 

사법부가 검찰의 정보수집 문제에 접근할 때에는 법관답게 풀어나가는 것이 정답이다. 객관적 사실관계 뿐만 아니라 용도 및 목적을 세세히 확인하는 것은 물론 이론적, 비교법적 분석을 통하여 그것이 불법인지, 부당한 것인지, 용인 할 수 있는 것인지 냉정한 결론에 이르면 된다. 형사재판에서의 검사의 역할과 지위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도 빠뜨릴 수 없다. 어느 경우이든 법관 다수의 의견이 노출됨으로써 해당 재판에 영향을 주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법관 단체의 의견이든 여론이든, 다수결로 결판낼 수 없는 것이 재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법관의 침묵은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지 않기 위하여 법관들 스스로 선택한 절제의 미덕이다.

 

룰에 기반한 경쟁을 하기보다 생사를 건 전쟁을 하는 정치상황 속에서, 앞으로도 법관의 중립은 지속적으로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적폐청산, 민주독재와 같은 시퍼런 구호가 난무하는 한, 사찰이라는 단어가 바로 불법사찰과 동일하게 인식되는 한, 정치적 해결의 장이 닫히고 정치적 사건들이 법원으로 몰려오는 한,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사법부를 지켜내는 일은 지난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재판을 하는 것이 법관의 숙명이다. 재판 하나하나에 용기와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비분강개의 뜻을 모으는 것보다 법관에게 더 어울리는 모습이다.

 

 

홍기태 원장 (사법정책연구원)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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