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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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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소원을 말해봐'라는 제목의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 무렵 "내 소원은?"이라는 물음을 나에게 던졌다. 보통 어릴 적 소원은 '무엇이 되자'였고, 그 노래를 들었을 때 머리 속에 스쳐간 소원의 형태도 그러하였다. 그 물음을 계속하던 중 내가 다니던 불교선원에서 모임 시작 전후 외쳤던 구호가 떠올랐다. '다 잘 알자! 다 잘 돕자! 다 잘 살자!'라는 문구였다. 다 잘 알아야 주위를 잘 도울 수 있고 결국 다 같이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곧바로 이 문구대로 살아보는 것을 소원으로 삼아보자 마음먹었다. 둘째 아이 태교에도 안성맞춤 같았다. 내심 내 소원의 모습이 '무엇을 하자'로 바뀌자 마치 제대로 된 어른이 된 양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원이 생활 속에서 곧바로 구현될 것이라는 믿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결국 '소원'을 외면했다. 곰곰이 돌이켜보니 '다 잘 알자'에 초점을 맞추어 너무나도 거창한 깨달음을 추구하려 했던 탓이리라. 다 잘 알려고 하니 온통 모르는 것 투성이고, 알아도 어설프게 아는 것 천지였다. 아는 체하기를 은근히 즐겨하던 나로서는 나의 무지와 마주하기 부끄러웠는지 그렇게 도망쳤었다. 그 후 '다 잘 돕자'에 집중을 하는 편이 수월해보여 방향을 바꿔 소원을 실천해 보려 하였다. 주위에 최대한 민폐끼치지 않으려 했고, 어려움을 겪는 동료의 짐을 나누려고 하였다. 사건관계인들에게 열성으로 설명하다 진정을 받기도 했지만, 생활 반경 속에서 나름 다 잘 도우며 살고 있다고 자족하였다. 

 

그러다 한 스님의 에피소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추운 겨울 사슴 한 마리가 자주 숲에서 내려와 절에 나타나자 어린 학승은 공양간에서 나온 자투리 푸성귀를 먹이 삼아 주었다. 그 모습을 본 큰스님은 소리치며 사슴을 숲으로 내쫓으셨다. 학승이 먹이를 찾지 못해 절에 왔는데 그리 매정하게 내쫓느냐고 큰스님께 하소연하자 큰스님은 자주 눈에 띄어 사냥꾼에게 잡히는 것이 더 큰 일 아니냐며 학승을 타일렀다.'

 

'누가 진정 사슴을 도운 걸까. 과연 내 앞을 거쳐 간 사슴들을 잘 도왔던 것일까.' 이런 의문에 스스로 답하지 못함을 깨닫고 다시금 얼굴이 붉어졌다. 결국 잘 알아야만 잘 도울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다 잘 알자'에 다시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이렇게 '내 소원'의 성취는 방향성이 수시로 바뀌어 언제 종국처분될지 알 수 없는 장기미제가 되었다. 과연 성취될 수나 있는 소원인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주위에 도움될 수 있는 앎을 좀더 많이 채우고 싶다.

 

 

한진희 부장검사 (고양지청)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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