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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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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CC에 부임해 처음 참여한 재판부 합의는 인상적이었다. 당시 캄보디아 재판관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앞으로는 재판부의 판결을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변하였다. 직전에 선고한 그들의 판결 이유에 대해 많은 비판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사건은 구속영장의 집행정지를 구하는 신청이었다. 국제 재판관들은 법률 해석에 따라 신청기각 의견을 낸 데 반해, 캄보디아 재판관들은 신청인용 의견을 내면서 "캄보디아 사회에서 구속되는 것은 큰 창피이고, 명예와 위신 등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라는 이유를 들었다. 위 판결이 공개되자 이유에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비판과 더불어 캄보디아 재판관들의 자질에 의문을 표시하는 견해까지 있었다.

  

올해 11월 6일자 프놈펜 포스트에 기고된 어느 변호사의 글에 따르면, 캄보디아 법원에서는 여전히 판결문이 공개되지 않고 있는데, 법원 수뇌부가 판결의 질적 수준과 정확성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정치적 사건, 부패 관련 사건의 불투명한 절차 진행, 판결문 논거의 비합리성이나 심리 미진에 따른 비판의 두려움 등이 그 이유라는 것이다.

 

판사가 판결의 결론에 이르게 된 진정한 이유를 모두 밝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과제일 수 있다. 미국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지낸 리처드 포즈너는 "판사가 이념적 성향, 개인적 요인, 판결 후 일어날 일에 대한 전략적 고려 등에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반면 프레데릭 샤워는 "법적 판단을 법의 형식성, 안정성과 구체적, 실질적 타당성 사이의 가치 형량의 문제라고 보면서, 전자를 우선시하는 대부분의 경우 그 판단 결과가 당면한 특정 사안에 대한 최선의 결과와는 다를 수 있다"고 한다. 어느 경우이든 판결에 전통적인 삼단논법에 의한 논증을 기재하는 것만으로 모든 독자를 만족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이곳 재판소에서도 판결 이유를 쓰면서 대륙법계 국가의 동료들은 법 원칙의 선언과 이에 따른 논증 및 결론 도출을 우선시하는데 반해, 영미법계 국가의 동료들은 당사자 주장의 당부를 중심으로 많은 각주를 활용하여 논거를 뒷받침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 재판부가 판결 이유의 핵심 판단 부분에 각주를 전혀 달지 않은 점을 기피신청의 사유로 주장하는 사건도 있었다. 한편 미국 연방대법원의 케이건 대법관은 얼마 전, 각주에서뿐 아니라 판결 본문에도 'Spoiler alert'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유튜브 동영상을 직접 링크하기도 하는 등 파격적인 형식의 판결 이유(Seila Law LLC v. CFPB)를 선보였다.

 

국제 규범상 '재판부가 결론에 이른 핵심적 이유를 알 권리'가 소송당사자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하나로서 보장되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로 이유를 기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확립된 견해는 없다. 영미법계의 관행처럼 근거를 상세하게 각주 등에서 밝히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판단의 객관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대부분의 국제재판소는 이를 따르고 있다.


법관이 결론에 이르게 된 이유를 오로지 법관의 개인적 성향이나 배경 등에서 찾는 시각이 부당함은 분명하다. 이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판결 이유의 객관성을 더욱 높이고 이를 신속, 투명하게 외부에 공개하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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