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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버클리 공공정책대학원 이야기

[UC버클리 공공정책대학원 이야기] <4>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인권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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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기업의 목적에 대한 다른 시각에서 출발

다만 CSR은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충돌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려워
인권경영(BHR)은 인권의 ‘보편성’과 ‘불가침성’에 기반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
최근 국제 사회에서는 CSR과 인권경영이 수렴하는 현상을 보여



UN 인권이사회는 2011년 6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UNGPs, 이하 UN 인권지침)을 만장일치로 승인하였다. UN 인권지침은 기업의 인권 책임에 관하여 UN이 처음으로 ‘승인’(endorse)한 공식 문서이자, 시민 사회와 노동계뿐만 아니라 기업계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아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 이후 UC버클리는 로스쿨과 경영대학원이 합작하여 ‘인권과 기업 이니셔티브’(HRBI)를 설립하였다. 이 기관에서 UN 인권지침과 관련된 교육·연구·산학 협력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는데, 필자는 이 기관이 개설한 인권경영 수업을 한 학기 동안 수강하였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인권경영(BHR)의 차이

인권경영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문득 드는 의문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무엇이 다르지?’하는 것이다. CSR에 관한 논의는 기업의 목적이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였다. 기업은 이윤이 아닌 공공성도 함께 추구해야 하고, 주주뿐만 아니라 임직원·공급업체·지역 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하여 기업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CSR에 관한 논의는 공유가치창출(CSV), 책임투자(RI)를 거쳐 현재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로 이어지고 있다. 용어와 의미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의 이야기이다.

인권경영(BHR*)의 논의는 CSR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이 논의가 인권이 보편적(universal)이고 불가침의(inalienable) 권리라는 인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인권은 인간이라면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로서 누구도 이를 인간으로부터 박탈할 수 없다. 인권경영은 ‘기업이 어떻게 하면 개인의 보편적 인권을 침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하는 관점에서 기업 활동을 바라본다. 반면, CSR은 기업이 사회에 공헌할 이슈를 ‘선별’하여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에이브리(C. Avery)는 CSR은 기업이 주체가 되어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일부의 사회 문제에 다가가지만, 인권경영은 ‘개인’을 중심에 둔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보편적 인권 문제에 접근한다고 설명한다.


‘경제적 가치’와 다른 ‘사회적 가치’가 충돌할 때

CSR과 인권경영의 차이는 기업이 추구하는 경제적 가치가 인권 등 다른 사회적 가치와 충돌할 때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보자. 전자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A라는 글로벌 기업이 있다. A사는 모든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환경친화적 건물을 사용하며, 경쟁사에 비해 협력업체에 높은 수준의 도급 대금을 지불한다. 지역 사회를 위해 도서관을 건립해 기증하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 단체에 기부를 하고 있다. 다만 A사는 핵심 부품을 동남아에 위치한 B사의 공장에서 공급받고 있는데, B사가 직원들에게 안전 장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하였다. 현지 경찰의 조사 결과 이 사고는 B사 담당자의 업무상 과실로 발생했다는 점이 밝혀져 사건이 종결되었다.

이 경우 A사는 CSR을 실천하고 있는가? 대체로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A사는 종업원·공급망·지역 사회 모두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기업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사는 인권경영을 하고 있는가? 이에 대하여 확실하게 대답하기는 어렵다. 다만, 만약 A사가 B사로부터 핵심 부품을 계속 수입하지 않으면 매출에 중대한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에 B사의 부실한 안전 관리를 사실상 묵인하였다면, A사는 적어도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수준의 인권경영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A사가 CSR을 실천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A사는 자신이 선별한 사회적 공헌 과제에 최선을 다하였기 때문이다.


인권경영의 세 가지 기둥: 보호·존중·구제

CSR의 의미를 부정하려는 취지는 전혀 아니다. A사는 매우 훌륭한 회사이다. 경쟁사에 비해 자사의 이익을 조금씩 줄여가는 손해를 보면서 이웃과 사회를 돕고 있다. 그런데 CSR의 접근법으로는 경제적 가치와 다른 사회적 가치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이 너나없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홍보하였음에도, 이들 기업이 진출한 개발 도상국에서 아동 노동은 계속되었다.

그래서 국제 사회는 CSR과 다른 인권경영의 접근법을 고안하게 되었다. 기업이 경제 활동을 하더라도 인간의 보편적 인권을 침해하지는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수립한 것이다. 물론 개별 국가는 법률로써 자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있고, 이 법률은 해당 국가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개별 국가마다 법률의 보호 수준이나 집행력이 다르다. 세계자본주의 시대에 인권을 보호할 의무를 국가에만 일임하였을 때에는 인권의 보편성과 불가침성을 온전히 보전하기 어렵다.

UN 인권지침은 보호·존중·구제라는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는 인권을 보호할 의무를 부담하고, 기업은 인권을 존중할 책임을 지며, 인권 침해에 대한 실효적 구제절차가 제공되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국가의 ‘인권 보호 의무’와 기업의 ‘인권 존중 책임’을 구분한 것이다. 전자는 국가의 ‘의무’(duty)이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기업은 국가처럼 개인의 인권을 적극적으로 ‘보호’(protect)할 법적 의무까지 부담하지는 않는다. 다만, 기업 활동으로 인해 개인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인권을 ‘존중’(respect)할 ‘책임’(responsibility)을 다하여야 한다.


기업의 ‘인권 존중 책임’의 내용: 인권경영 선언, 인권실사, 구제 절차 마련

그러면 어떻게 해야 기업이 ‘인권 존중 책임’을 다하였다고 볼 수 있을까. UN 인권지침이 제시한 내용은 세 가지이다. 기업이 인권경영을 선언하고, 인권실사를 실시하며, 인권침해에 대한 구제 절차를 마련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인권실사’(human rights due diligence)란 개념이 중요하다. 인권실사는 ① 기업활동이 인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발견(identify)하고(인권영향평가), ② 그 발견된 내용을 기업의 의사결정구조에 통합(integrate)하여 인권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줄이며, ③ 이해관계자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실제로 부정적 영향이 줄었는지 검증(verify)하고, ④ 대외적으로 소통(communicate)하면서 그 결과를 공유하는 절차를 의미한다.

국내에서는 2019년 공공기관 경영평가 항목에 인권경영이 포함되면서 관련 논의가 진전되었다. 다만 공공기관의 인권경영이 ‘인권영향평가’에만 집중된 것은 아닌지 조금 우려되기도 한다. 인권영향평가는 인권실사의 첫 번째 절차로 기업의 어떠한 활동이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지 ‘발견’하는 작업이다. 인권영향평가는 인권실사의 시작일 뿐이고, 기업의 인권 존중 책임은 기업이 의사결정구조를 개선하고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면서 그 발견된 인권침해 가능성을 줄여나가는 데까지 미친다. 인권영향평가 체크리스트에 ‘예·아니오’ 표기를 하고 좋은 경영평가 등급을 받았다고 해서 인권 존중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CSR과 인권경영의 수렴 - 인권경영의 확산을 위하여

국내 사기업의 인권경영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전 세계 195개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UN 인권지침의 준수 여부를 평가한 기업인권벤치마크(CHRB)의 2019년 보고서에 의하면, 국내 글로벌 기업 3개 회사의 평가 점수는 각각 39.6점(42위), 17.0점(106위), 15.2점(115위)이었다. 1·2·3위인 아디다스(83.3점), 리오틴토(76.0점), 유니레버(75.4점)와의 차이가 작지 않다. 이 결과만 보면 국내 기업들의 인권경영 수준은 낮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국내 기업들이 아직 본격적으로 UN 인권지침에 따른 인권실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래된 결과인 것 같기도 하다.

국제 사회에서는 CSR의 접근과 인권경영의 접근이 수렴해 가는 것 같다. 최근에는 기후위기로 인한 환경·사회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하여 ESG에 관한 논의가 한창인데, 이미 적도원칙과 EU 택소노미에는 기업이 UN 인권지침을 준수해야 한다는 내용이 ‘S(Social)’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 PRI(책임투자원칙)는 지난 10월 기관 투자자들이 지켜야 할 인권경영 가이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제는 기업들이 CSR을 실천하더라도 인권경영을 하지 않으면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 속에서, 법률가들의 역할 중의 하나는 기업의 인권경영을 돕는 것이다. 사실 적극적으로 고용을 창출하고자 노력하는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인권경영의 문법이 다소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인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제거하기 위해 추가적인 비용이 소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연성법(soft law)인 UN 인권지침을 따른다고 해서 기업에 새로운 법적 의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UN 인권지침은 인권 리스크가 가장 ‘중대한’ 영역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인권실사를 시작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UN 인권지침과 국제 사회의 논의를 면밀히 공부하여, 경영자가 인권의 ‘보편성’과 ‘불가침성’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할 필요가 있다. 국내 기업들이 국제 사회에서 인권경영 논의를 선도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 Business and Human Rights (BHR)은 직역하면 ‘기업과 인권’이지만, 국내에서는 ‘인권경영’이라는 단어가 통용되고 있으므로 이를 사용하였습니다.


민창욱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지평)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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