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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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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커피 맛을 몰랐습니다. 대학에 와서야 겨우 자판기 커피를 즐겼는데, 커피 맛보다는 설탕과 프림이 들어간 부드럽고 달달한 맛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아메리카노에 입문하게 된 것은 커피를 좋아하는 아내와 데이트를 하면서부터입니다. 그렇게 마시던 것이 언젠가부터 샷을 추가하거나 아예 에스프레소만 마십니다. 하루 3~4잔은 보통이고, 종일 물 대신 커피만 마시는 날도 있습니다. 

 

요즘 들어 부쩍 몸이 건조해졌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두피가 건조해지는 것은 치명적이었습니다. 커피가 이뇨작용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커피 때문인가 싶어 몇 달 전부터 커피를 끊었습니다. 커피를 끊자 두통이 시작됐습니다. 온종일 머리가 지끈거리는 통에 커피 대신 두통약을 찾았습니다. 화가 나지도 않았는데 인상을 쓰고 있어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하기도 합니다. 날카로워진 신경 탓에 별것 아닌 일에도 예민합니다. 또 커피를 끊으니 잠이 늘었습니다. 낮잠이요. 오후에는 20~30분 정도 책상에서 조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집중도 안 돼, 한 시간이면 할 일을 두세 시간에도 못 하고 끙끙거리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커피를 마셨습니다. 누군가 사다 준 것을 차마 버리지 못했던 것인데,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우선 그 향기에 취했고, 목을 넘기자 두통이 사라졌습니다. 머리가 맑아지고, 기운이 났습니다. 이 좋은 걸 왜 끊었지.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커피 중독입니다.

 

하물며 커피도 이렇게 끊기 어려운데, 마약은 말해 뭣할까요. 마약 전담부에서 재판을 하면서 마약을 끊겠다는 반성문을 수도 없이 봤습니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하고 의례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보니 그게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닌 듯합니다. 피고인들 대부분이 수백 번도 더 마약을 끊어봤을 겁니다. 하지만 '딱 한 번'이라는 말 앞에 무너집니다.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지만, 기왕에 시작한 일을 멈추는 것은 강한 의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처벌보다 치료가, 감시보다는 도움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이제는 두통도 없고 낮잠도 별로 자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딱 한 잔만'의 유혹에 흔들립니다.


 

김태균 판사 (수원지법)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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