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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우리 민법전의 명백한 오류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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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같은 제목의 글을 작년 12월 5일자 '법률신문'에 실은 바 있다. 그 글을 읽고 느낌이 적지 않았다는 감상을 전하는 분들이 있으므로, 민법 규정의 문법적 오류라고나 할 부분을 지적한다는 취지를 이 글에서 이어가고자 한다.

 

민법 제389조는 채무의 강제이행에 관하여 규정한다. 주지하는 대로 그 제3항은 "그 채무가 부작위를 목적으로 한 경우에 채무자가 이에 위반한 때에는 채무자의 비용으로써 그 위반한 것을 제각(除却)하고 장래에 대한 적당한 처분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여, 부작위채무에 대하여는 다른 종류의 채무에는 인정되지 않는 특별한 강제실현의 수단을 정한다. 여기서 법원에 그러한 강제실현을 청구하는 주체가 채권자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이는 제1항에서 "…채권자는 그 강제이행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에 비추어서도 명백하다. 

 

그런데 위 제3항의 규정을 문언만으로 보면, 채권자는 스스로 '그 위반한 것을 제각'할 수 있으며, 나아가 법원에 대하여 장래에 대한 적당한 처분을 청구할 수 있는 것으로 읽힌다. 또는 채권자는 스스로 그 위반한 것을 제각하고 난 다음에 비로소 법원에 대하여 장래에 대한 적당한 처분을 청구할 수 있는 것으로 읽히기까지 한다. 그러나 위 규정은 채권자에게 그와 같은 일종의 자력구제를 승인하는 것이 아니며, 사실은 채권자가 그 위반한 것의 제각(나아가 장래에 대한 적당한 처분)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임에는 논의의 여지가 없다. 제389조의 제1항 본문, 제2항 및 제3항이 모두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로 종결되는 데서도 알 수 있는 대로, 위와 같은 제각도 당연히 법원에 대하여 청구되어야 하지 채권자가 스스로 이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보면, 위 제3항은, 의용민법 제414조 제3항에서와 같이, "…그 위반한 것을 제각하고 장래에 대한 적당한 처분을 하는 것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고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민법의 제정과정에서 이 점을 논의한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다.

 

나아가 지역권의 시효취득에 관한 민법 제294조는 "지역권은 계속되고 표현된 것에 한하여 제245조의 규정을 준용한다"고 정한다. 여기서의 제245조는 부동산소유권의 취득시효에 관한 원칙적 규정으로서, 위의 제294조는 지역권 중에서 계속되고 표현된 것에 대해서만 시효취득이 허용되고 나아가 그 기간은 제245조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는 취지임은 물론이다. 그런데 위 규정이 지역권을 주어로 하여서 '준용'의 주체로 읽히게 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이를 "계속되고 표현된 지역권에 한하여 제245조의 규정을 준용한다"고 읽는다면 문제가 없다고 하여야 할까? 이 역시 "지역권은 계속 및 표현된 것에 한하여 시효로 인하여 이를 취득할 수 있다"고 하는 의용민법 제283조와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덧붙이자면, 위 제294조의 표제도 '지역권 시효기간'이 아니라 위 의용민법 규정과 같이 '지역권의 시효취득'이라고 할 것이다).

 

또한 상계의 효과에 관한 민법 제493조 제2항은 "상계의 의사표시는 각 채무가 상계할 수 있는 때에 대등액에 관하여 소멸한 것으로 본다"고 정한다. 이와 같이 "상계의 의사표시는…소멸한 것으로 본다"고 하는 것은 주어와 그에 대한 서술이 뒤엉킨 것으로 이치에 닿지 않음이 너무나 명백하여 무얼 덧붙여 말할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이 터무니없이 구성된 문장이 버젓이 민법전에 들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슬그머니 부끄럽게 한다. 참고로 이에 대응하는 의용민법 제506조 제2항은 "전항의 의사표시는 쌍방의 채무가 서로 상계함에 적합한 때에 소급하여 그 효력을 발생시킨다"고 정한다.

 

 

양창수 석좌교수 (한양대·전 대법관)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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