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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저울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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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로마시대에 이르러 유스티티아(Justitia)로 불리워졌으며, 오늘날 정의를 의미하는 Justice는 이 Justitia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세계 각국에서 볼 수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대체로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으며, 두 눈을 가리고 있는 모습이다.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저울은 엄정한 정의의 기준을 상징하고, 칼은 그러한 기준에 의거한 판정에 따라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정의와 불의의 판정에 있어 사사로움을 떠나 공평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정의의 여신이 칼과 저울을 동시에 들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 독일의 법학자 Rudolf v. Jhering은 그의 저서 '권리를 위한 투쟁(Kampf ums Recht)'에서 "정의의 여신은 한손에는 권리를 재는 저울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권리를 관철시키는 칼을 쥐고 있다. 저울이 없는 칼은 적나라한 폭력에 지나지 않으며, 반대로 칼이 없는 저울은 그야말로 무기력한 법일 뿐"이라고 설파하였다. 정의의 여신은 저울을 통해 엄격한 정의의 기준을 확립하고, 그 정의를 칼을 통해 실현한다. 곧 저울을 통해 무엇이 정의인지를 정확히 판단하고, 그 정의가 반드시 실현되도록 하는 것, 정의의 실현을 빙자한 무자비한 폭력이 자행되지 않도록 하며, 반대로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불의가 판을 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칼과 저울은 불가분으로 결합되어 있고, 칼은 저울을 통해 규율되며 저울은 칼을 통해 실현된다. 정의의 여신이 칼을 사용하는 힘과 저울을 다루는 숙련된 기술이 합치되어야 올바른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정의에 대한 너무나 다른 관념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정의(正義) 자체보다는 정의에 대한 정의(定義)를 둘러싸고 각자의 편의에 따라 이해와 주장을 달리하는 것이 우리 사회인 것 같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인간에게 실망한 신들이 올림포스 산으로 떠나가 버린 후에도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디케와 같다고 생각되는 신)는 마지막까지 정의를 호소하다가 결국 인간의 타락을 견디지 못하고 하늘로 올라가 천칭자리 별이 되었다고 한다. 정의의 여신이 떠난 세상이기에 남아 있는 인간은 편의에 따라 정의를 판단하고 실현하는 것이 아닐까? 민주는 헌법 위에 있고, 법치를 통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정의가 설 자리가 있을까? '검찰 수사에 따르면' 이라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어느 검찰청 어느 부서의 수사에 따르면' 이라고 하여야 비로소 이해가 가능하다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때로는 저울없이 칼만 들고 있는, 때로는 칼도 저울도 들고 있지 않는 정의의 여신상이 그 때 그 때 필요에 따라 만들어 진다. 당연히 그 때 그 때 스스로 정의로울 수밖에 없다. 정의의 여신이 한손에 저울을, 한손에 칼을 동시에 들고 있는 의미는 외면된다. 저울을 통하지 않은 칼은 정의의 실현이 아니다. 그러기에 저울과 칼을 동시에 들지 않은 상태에서 정의를 외칠 것은 아니다.

 

 

이상철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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